일선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채 7차 교육과정의 시행을 밀어붙인 교육부가 엊그제 '탄력운영'을 권장하면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각 지역과 일선학교의 여건에 따라' 7차교육과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라는 내용이지만 말많고 탈도 많은 7차교육과정을 지역별로 또는 학교별로 알아서 시행해보라는 것이나 다름 없다. 교육부가 새 교육과정의 모순점과 불합리한 점 여건상 시행에 옮기기가 불가능한 점 등을 시인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강행할 것으로 보이던 7차교육과정은 이로써 여건에 따라 운영해도 그만 인해도 그만인, 명목상의 지침으로 남게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나라의 교육정책이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지, 교육의 목표와 교육내용을 담은 교육과정이 '아니면 말고'식의 허상이 되어도 괜찮은 것인지 딱하고 한심한 느낌이 든다. 교육부는 '탄력운영'을 권장하면서 "7차교육과정을 제대로 적용해 보지도 않고 중단 유보할 경우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성이 크게 손상돼 부정적 영향이 막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행하자니 여건이 따르지 않고 중단하자니 교육정책에 대한 신뢰가 손상되고, 그래서 '탄력운영'이란 궁여지책을 내놓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7차교육과정은 수요자 중심의 '열린교육'을 펼쳐가겠다는, 교육이론상으로는 흠잡을 게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언젠가는 우리 교육이 그쪽으로 가야 한다는 점에서 옳은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게 틀림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도 교육청과 일선학교에서 당장 시행에 옮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이론상의 하자가 아니라 현실적 여건이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수준별 수업이 안고 있는 문제점도 방법상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철학으로 접근해야 할 과제였다. 심화과정과 재이수과정을 지도하는 데 필요한 교사 인력이나 학생의 교과선택 폭이 늘어난데 따르는 전공교사·시설의 확충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한 시책이었다.

교육부는 10년 가까이 교육개혁을 추진하면서 제도개혁에만 중점을 두어 필요한 교육재정도 확보하지 못한채 밀어붙이기식으로 일을 벌여왔다. 그 결과 일선 교육현장의 반발을 불러왔고 뒤늦데 여건이 미흡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물러서고 있다. 7차교육과정을 시행에 옮기기 전에 일선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었더라면 준비 안된 시책을 강행하는 어리석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 교육현장의 갈등 혼란도 그만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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