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농촌에서 밀짚 모자 차림에 바지를 걷고 삶아 놓은 논에 들어가 "못줄을 늘려라", "모 춤을 던지라"며 모내기를 하겠다면 크게 시대를 착오하는 것이다. 그런 모내기 용어조차 사라졌을 뿐 아니라, 수십 명이 못줄에 맞춰 모를 심던 그런 풍경은 아주 옛날 얘기이기 때문이다. 소 대신 경운기나 트랙터로 논을 갈고, 사람대신 이앙기가 모를 심어야 채산이 맞을까 말까 한 마당에 한없이 인건비가 들어가는 이 민속놀이 같은 모내기는 지금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런 희화(戱畵)를 지금 신문이나 TV를 통해 보고 있다. 가뭄현장의 일손 돕기라며 내려오는 정치권 '높은 분'들의 모내기 이벤트인 것이다. 그러나 가뭄에 멍든 농심을 또 한번 아프게 할 뿐 아니라, 도시민들에게도 비웃음거리인 그런 정치 쇼는 이제 진정돼야 한다.

차라리 대규모 훈련을 하듯 팔을 걷어붙이고, 주둔지 농민들을 찾아 나서, 물웅덩이를 파고, 살수차로 물을 붓는 군인들의 정성 같은 그런 봉사가 농민들에게 더 값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회의원 등 100여명의 정치권 인사들이 참석한 모내기 지원현장에서 "물만 있으면 기계로 30∼40분이면 해낼 일을 저 많은 사람들과 자동차가 와서 난리를 피운다"는 한 농민의 육성이 신문에 그대로 났다. 맞는 말이다. 사람이 논에 들어가 모를 심으려면 논을 갈고 써레질까지 해 놓아야 하고, 이앙기에 맞춰 키운 모판에서 손으로 모를 심을 수 있도록 모 춤을 따로 만들기까지 했을 것이다. 왜 이런 수고까지 부담을 주면서 농촌을 찾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정치에 이벤트적 요소가 가미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한해 현장까지 정치극의 소도구로 사용하는 듯한 인상을 국민에게 주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은 민초의 솔직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장 체험까지 할 수 있는 이 기회를 정쟁에서 민생정치 복원의 계기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군인들의 주둔지역 '가뭄극복 작전'에는 카메라가 따라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는 '물보다도 소중한' 감동의 교감이 전해지고 있다.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에서는 물탱크를 끌고 온 군인들에게 "올 농사는 당신들이 반은 지어준 셈"이라며 음식을 대접하려는 농민과 "음식물을 제공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는 장병들과의 보기 좋은 실랑이가 감동을 주기도 했다. 金大中 대통령은 가뭄현장을 찾아가 "비 안 오는 건 천재지만 극복하는 건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뭄을 극복할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희망이다. 미증유의 한해를 겪고 있는 농민들에게 가뭄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줄 수 있는 격려가 정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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