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다운 비가 내리고 있다. 4개월 동안 타들어 가던 대지의 열기를 식혀주기만이라도 해줬으면 했던 이번 비는 해갈까지 기대하게 됐다. 이미 때를 놓쳐 반타작 농사지만, 이 비로 끝모를 내면 올 모내기는 끝이난다. 그러나 단비를 타고 전해지던 한때의 '호우주의보'는 다시 가슴을 털컹 내려앉게 했다. 기상특보부터 앞세우고 내린 이번 비가 올 여름 장마가 예사롭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23일 남부지방에 상륙하는 장마전선이 그대로 북상하면 중부지방은 24일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겠지만 다시 남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해 곧 큰비가 내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지난겨울 하루건너 하루씩 내리던 대설이나 최악의 한파를 아무도 예측 못했듯이 올 장마도 그 강도를 예측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기상청은 일단 올 장마 패턴을 예년과 비슷하게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동안 전혀 장마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사상 유례없는 왕 가뭄에 오로지 비 타령만 하다가 정작 비가 쏟아지니까, "제발 비 좀 그만 오라"고 할 지경이 돼 한해와 수해가 하루아침에 반전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전국의 개천은 깊게 파헤쳐지지 않은 곳이 없다. 물길을 뚫는 대신 이리저리 산더미 같은 토성을 이룬 강바닥 흙더미들은 물이 불면 유속을 방해하고 물길을 돌려놓아 예기치 않은 '장마흉기'로 바뀔지도 모른다. 넉 달째 물기를 맛보지 못한 땅은 점성이 최고로 메말라 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산사태가 나고, 도로가 붕괴되고 둑이 터지며, 도심에서는 축대가 주저앉는 상황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평년 수준의 장마를 재난으로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늘 경험하는 것이지만 천재를 어떻게 해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탄력행정운용으로 재해를 줄이고, 복구의 수고를 덜 수는 있다. 우선 가뭄대책을 수해대책으로 응용하고 전환할 수 있는 반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저수지 준설, 관정 파기를 중단하고 장마를 기다리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둘러 하자는 것이다. 바짝 마른 도내 339개 저수지는 장마 비를 가둘 수 있는 그릇이다. 내년에 더 많은 물을 가두기 위해 서둘렀던 준설저수지는 역으로 장마 대피소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반영구적으로 뚫은 관정은 장마로 파괴된 관계시설 대용으로 다시 쓸 시설이다. 준 재해급 성금인 '양수기 성금'이 장마로 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처럼 '가뭄대책 용'이라며 관행적 주장만 고집할 일이 아니라, 제도나 규정을 고쳐서라도 융통성 있게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트길 바란다. 가뭄과 장마 사이에 인터벌이 없는 유별난 올 여름은 행정의 그런 탄력성과 융통성도 시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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