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사교육비 부담으로 허덕이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3월 기획예산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교육비 총 규모는 33조5천억원, 이중 학부모들이 부담하는 수업료 기성회비 등 공교육비가 11조7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여기에 한국교육개발원이 추정한 사교육비 29조원을 더하면 학부모들이 부담하는 연간교육비는 무료 54조원이나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쯤되면 평생을 벌어 자식교육에 투자한다는 말이 나올 법하고 공·사교육비 부담에 허리가 휜다는 말도 엄살이 아니다.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해마다 증가하는 것은 도를 넘어선 자녀 교육열에도 원인이 있지만 공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그만큼 낮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초 중등학생의 과외비가 일본의 3~4배나 되는 것으로 기획예산처는 추정하고 있다. 공교육이 사교육에 밀리는 이런 현상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 3월 '교육재정 확충 및 효율화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내고 우리나라 교육정책이 실패를 거듭한 것으로 분석했다. 과외금지(1980년), 대입본고사폐지(1996년), 보충수업폐지(1999년), 교원정년단축(1999년), 내신성적제도(1999년), 수능시험 난이도 하향조정(1999년) 등 일련의 개혁적 교육정책이 공교육 기반을 흔들어 학부모들의 학교교육 불신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공교육 부실과 이에 따른 사교육 확산이 학부모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교육현장에서 선생님들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이른바 '열린교육'이 제도화 획일화의 과정 속에서 정형화 되었고 그 결과 학습자 중심의 '개방형' 교육이란 미명하에 마땅히 가르치고 배워야 할 교과과정까지 학생의 '선택'에 맡기는 현상으로 치닫고 있다. 기초학력이 부실해도 한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에 특기적성 교육이 기본 교육과정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현상도 생겼다.

그바람에 학부모들은 학원과외를 통해 기초학력 미달 과목을 보충하고 영어 음악 미술 무용 컴퓨터 등을 가르치는 전문학원 과외를 통해 공교육보다 나은 수준의 특기 적성 교육을 시키려고 '허리가 휘는' 학원비를 부담하고 있다. 정부가 잇따라 발표하는 개혁 차원의 조령모개(朝令暮改)식 교육정책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오히려 늘어나고 '자녀 학원보내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니 답답하고 딱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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