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군이 남북철원군 교류협력 협의차 평양을 방문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느껴지는 것은 '그래도 남북교류는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기초단체급의 첫 남북교류라는 점과 북측이 의외로 이의 제안에 응해 왔다는 점에서 예상 밖의 성과도 기대해 보는 것이다. 다만 이번 방북에서 탁상 위에 풀어 놓을 보따리의 내용물이 무엇이냐가 문제일 것이다. 남북관계는 대체로 예정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 기대치는 이미 '일단 물꼬부터 트자'는 수준을 넘어 어느새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 것이냐'는 현실론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혹시 철원군의 방북단도 이런 부담을 짊어지고 북한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번 방북에서 철원군은 벼 우량품종 시범포 운영 등 농업교류협력사업과 DMZ 내 궁예도성 공동발굴 및 고려건국 배경 학술회의 개최 등 문화교류협력사업은 일단 합의서를 끌어내겠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협의 수준에서 봉래호로부터 철원평야의 농업용수 공급, 경원선과 금강산전철 복원 문제를 거론한다는 '전략'을 짜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봉래호(蓬萊湖)는 과거 철원평야 7천 정보의 용수원이었으나 분단 후 북한이 황해도로 물길을 돌린 중요한 수리시설이다. 정부급 합의로나 가능할 봉래호 용수공급이나 경원선, 금강산 전철 문제를 뒤로 밀어놓은 것은 일단 이번 방북에서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점에서 잘 한 것 같다. 그러나 합의서를 끌어내겠다는 농업·문화교류협력도 절대 만만치 않다. 특히 궁예도성 발굴은 학술목적이긴 하지만 사실상 DMZ를 개방해야 하는 군사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궁예도성이 '세계적 미발굴 유적'이라는 학계 평가와 당시 시대적 상황이 역사적 재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연 북한이 '좋다'고만 하면 곧바로 삽을 들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 솔직히 그런 준비는 돼 있는 것인지를 역사적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이번 방북은 실적을 염두에 둔 필요이상의 욕심은 금물이다. 무엇보다 "무엇을 합의할 것이냐?"는 주민들의 채근도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에 강원도가 있듯이 철원군도 북한에 구(舊) 안협에 소재지를 둔 철원군이 있다. 고성군과 함께 같은 이름의 군이 남북이 있는 분단 군인 것이다. 이 분단 군의 반세기만의 재회를 놓고 지역에서 하고 싶은 말은 한도 없이 많을 것이다. 더구나 주민의 기대를 온 몸에 받고 가는 방북단은 하고 싶은 일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방북이 정부에서 광역단체, 그리고 드디어 기초단체까지 파급된 남북교류협력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더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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