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이 지난겨울은 동토(凍土), 봄에는 한발, 여름이 되자 물바다가 되며 사상 최악의 기상재앙을 기록하고 있다. 대마리와 정연리서는 '제발 비 좀 내려달라'던 엊그제의 고대가 '제발 비 좀 멈춰달라'로 변했다. 사흘동안 두 마을에 각각 569.5㎜, 574㎜란 아찔할 만큼 많은 비가 내렸다. 지난 96년, 99년 최악의 수해를 당했던 주민들은 이미 비에 놀란 가슴을 하고 있다. 허겁지겁 고지대로 피신하는 주민이나 당국이 하늘을 원망하기 전에 하마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수방대책을 세우다가는 2∼3년 주기로 사상최악의 기록 경신을 하면서 물난리를 겪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비가 멎으면 곧바로 수해복구에 들어간다. 이번 복구에는 '철원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모두 108가구 390명의 주민이 밤샘 피신을 했던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와 갈말읍 정연리는 민통선 북방의 한탄강 상류 유역마을로 96년 수해 때 강이 범람하면서 수몰됐던 마을이다. 그후 집을 새로 짓고, 강둑을 높이면서 수해복구를 했으나 두 마을은 이번에도 강이 범람하는 공포에 휩싸였다. 철원평야의 젖줄인 토교, 동송저수지는 장마를 대비해 비워놓았었지만, 사흘 폭우에 만수가 돼버렸다. 이들 저수지도 지난 수해 때 둑이 유실되거나, 둑이 밀려나가는 '슬라이딩'현상이 감지됐었다. 복구한 수몰현장이 다시 수몰위기를 맞고, 붕괴위험을 경험한 저수지가 또 위험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 문제다. 언제까지 봄에는 평야를 적시는 젖줄이다가 비만 오면 '물폭탄'으로 돌변하는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수해복구'란 말뜻은 수해 전 모습대로 원상 환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년에 한 번 정도'라던 비가 2∼3년 주기가 될 만큼 해를 거듭할 수록 기상재해 강도가 높아지는 마당에 원상 환원했다가 또 수해를 당하는 그런 '복구'는 의미가 없어졌다. 기록 이상의 강우에 대비하는 개념인 '수해개발'이나 '수해개선'이어야 한다. 원상 환원의 개념인 '수해복구'란 말을 행정용어에서조차 삭제해야 한다. 끊어진 다리, 낙석으로 막힌 도로, 산사태로 매몰된 마을과 농경지, 흔들리는 저수지 둑 등 지금 장마 막바지에 복구를 기다리는 수해현장은 도처에 널려있다. 이들 수해현장은 당장 응급복구이고, 그 다음 원상복구일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 더 많은 비가 오면 또 '수해현장'이 될 것이다. 이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해대책이 국민의 재산보호와 국토의 보전차원에서 수립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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