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 논설위원

 제나라에 재물을 탐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시장에 나갔다가 그만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시장통에서 장사하는 한 상인의 옆으로 다가가더니 어느 틈엔가 돈을 훔쳐 달아나는 것 아닌가. 그 광경을 목격한 관리가 그 덜미를 낚아 채 꾸짖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데 어찌 그토록 태연히 남의 돈을 훔쳐 달아나는가 하고 힐책했다. 도둑이 대답한다. 돈을 훔쳐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이미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돈만 눈에 들어왔다고 말이다. '돈을 취할 때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取金之時 不見人)'는 뜻으로 중국 전국시대 열자(列子)가 전하는 말이다.
 요즘 정치판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재물을 탐하는 이 도둑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온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어쩌면 이렇게도 태연히 구악폐습을 재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선거판이 다소 들뜨고 과열되는 것이야 익숙하게 보아온 모습이라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시쳇말로 정말 비호감이다. 지켜보는 유권자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어깃장을 놓고 있으니 그 옛날 저자거리 도둑의 행태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5·31 지방선거가 이제 한달여 앞으로 바짝 다가오면서 선거판이 달아오르고 있다. 이번 선거는 시·도지사와 시장·군수·구청장,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을 한꺼번에 뽑는 동시선거다. 바로 한달 뒤면 전국에서 광역자치단체장 16명, 시장·군수·구청장 등 기초자치단체장 230명, 광역의원 733명(비례대표 78명 포함), 기초의원 2888명(비례대표 375명 포함) 등 모두 3867명의 이른바 지방자치의 일꾼이자 지도자를 새로 선출하게 된다.
 이번 선거는 지방자치가 부활된 지 10년 세월이 지나 활착기를 맞는다는 시대적 의미가 각별하다. 풀뿌리민주주의의 근간을 형성하는 지방선거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 개개인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생활자치의 내용을 결정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더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 필요한 선거다. 더욱이 이번 5·31선거부터는 지방의원 유급제가 도입돼 보다 전문적이고 본격적인 자치시대를 열어가야 하는 출발점의 뜻이 크다. 이것은 시대의 당위이자 국민의 여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 정치권의 눈에는 시대적 소명도, 국민적 여망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입으로는 시대적 요구를 논하고 국민의 뜻을 내세우면서도 행태는 정반대다. 급기야 거물급 현역의원이 뒷돈을 받다 적발되고, 공당의 사무총장이 출마예상자로부터 수 억원의 돈을 받았다가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금 크고 작은 공천잡음이 중앙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 민의를 반영하겠다며 상향식공천, 투명한 경선원칙을 천명했던 공당들이 슬그머니 뒷걸음치며 흉내만 내는 것으로 유권자들을 기망하고 있다는 지탄의 소리가 비등하다.
 기성 정치권은 기초단체장의 공천배제를 요구하는 지역의 목소리와는 달리 오히려 기초의원에 까지 정당공천을 확대, 이번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공천권을 배경으로 한 검은 거래가 속속 드러나고 의혹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합리적인 기준과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인재를 등용하고 공정하게 경쟁하고 승복하는 선거문화를 만들기 보다는 감추고 미봉하려는 궁색한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무소속군이 하나의 거대한 정파를 형성해가고 있는 의미를 새겨봐야 한다. 이들 상당수는 여야 정당이 제도적으로 수렴했어야 할 세력이다. 무소속의 득세는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 정당의 실패를 말해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비춰진다. 말로는 경선공천(競選公薦)을 천명했지만 민의와 대도(大道)를 외면하고 밀실당천(密室黨薦)과 정실사천(情實私薦)이 많았다는 징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어느 선거 때던가. 한 지방일간신문의 '콩 심은 데 팥 나는 정치'라는 제목을 달아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막가파식 정치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영웅을 요구하는 시대는 아니라지만 인물을 세우고 가려 뽑아야 하는 이 때다. 시인 조지훈 선생은 인물대망론을 통해 '언행이 일치하여 솔선궁행하는 사람, 청렴강직하되 무능하지 않아 말단의 부패까지 불식하고 통솔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 앞날의 정치적 생명에 개의치 않고 목숨까지 걸어 국정의 대의에 임하는 사람'의 출현을 갈망했다. 기성 정치가 스스로 이렇게 판을 흐려 놓고 있으니 다 무망한 일인가.
김상수 논설위원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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