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라면 올 여름 동해안 피서지에서 사상 최저의 범죄발생 건수를 기록할 것 같다. 여름 경찰서들마다 툭하면 터지던 해수욕장 폭력 절도사건이 올해는 손에 꼽을 만큼 줄어들었다. 단골 골칫거리이던 성범죄도 이렇다 할만한 게 아직 없다는 것이다. 해수욕장 인근 아파트촌 주민들을 못살게 굴던 고성방가나 폭죽소동도 크게 줄어들었다. '피서문화가 정착돼 가는 고무적 현상'이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 고개를 끄떡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법으로 다스리는 범죄는 줄었는지 모르지만, 피서지 스트레스는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무질서, 제 멋대로, 얌체족은 오히려 더 늘어난 것이다. 피서지 관리인들도 그 부분만은 '못 고칠 병'이라고 고개를 흔들고 있다. 그렇다면 피서지의 야간법정, 범죄예방상담소 운영이나 강력한 단속활동으로 범죄는 줄어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런 법이 못 미치는 곳의 우리네 피서문화 수준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추락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이 같은 법망 밖의 행위가 국민의식수준의 바로미터가 되는 법이다. 피서는 심신의 휴식이자 흩어진 자신을 추스르는 기회이다. 그 소중한 기회를 세상의 온갖 꼴불견과, 난잡함이 난무하는 자리에서 허비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손해다.

길을 떠나는 수백만 피서객은 물론 온 국민감성에 흠집을 내는 일이기도 하다. 더구나 피서는 한가족의 이동이다. 좋든 싫든 피폐한 피서문화에 자녀를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새 피서문화를 창출해 향유하려는 인식이 싹트기를 기대하는 것은 이때문에 더 간절하다. 피서 길의 정체현상은 피서차량은 폭주하는데 비해 협소한 도로나 잘못된 도로망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무단 주정차나 끼어 들기가 더 그 흐름을 방해할 때가 많다. 해수욕장이나 계곡이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리는 것도 제때 치우지 않는 관리체계가 문제다. 그러나 그것도 버리지 않았다면 그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경포해수욕장의 '세족장'을 폐쇄했던 것은 엉성한 시설관리가 문제였다. 그러나 그것도 누군가 망가뜨린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바가지 요금이나, 불친절을 문제삼기도 하지만, 그것도 수요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바로 그 현장에서 '내가 심신의 휴식을 위해서'또는 '내가 가족과 함께'라는 생각을 한 번만 한다면 불치병인줄만 알았던 '추락한 피서문화'를 얼마든지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동해안 청정피서지에서 남은 여름 새 피서문화가 싹트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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