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6 돌을 맞았다. 광복을 맞은 지 반세기가 지나고 또 다시 몇 년이 지나 21세기 들어 첫 번째 맞는 광복절이라 특별한 감회에 젖게 된다. 올 광복절에 우리는 또 다른 차원에서 민족적 회한으로 가슴에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엊그제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태평양전쟁 전범자들이 합사(合祀)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함으로써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분노와 실망과 우려를 낳게 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은 우리와 교과서 왜곡, 꽁치 조어 등의 문제로 심각한 외교 분쟁을 겪는 중이다. 이러한 최근의 사태를 간과하고 일본 총리로서 군국주의의 상징적 장소에 갔다는 사실을 우리를 능멸하는 일본의 국가주의가 그 실체를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과거 회귀식 국가주의의 부활을 꾀하는 일본의 전근대적 사유 체계에 주목한다.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웃 나라에 대한 배려와 식민 침략에 대한 반성 없이 일본은 범상히 보아 넘기기 어려운 급속한 우경화로 내닫고 있다. 말을 바꾸면 냉전체제 붕괴와 더불어 좌우세력 균형이 무너지고,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전략이 가세하는 등 유리한 내외 조건을 틈타 일본 우익세력은 전(前)세기에 저지른 제국주의 침략과 패전으로 안게 된 모든 족쇄를 하나하나 털어내는 중이다. 평화헌법에 명시된 군사력 보유 금지가 사문화된 지 오래며, 이제 '총리 자격'을 부정하지 않은 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게까지 된 것이다. 고이즈미가 참배 날짜를 앞당기는 등 몇 가지 수사적 기교를 부렸으나 일본의 국가주의 지향은 이미 불가역적(不可逆的)이고 따라서 조금도 의심할 나위 없다.

광복절을 맞아 우리는 일본의 극우 국가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비이성적으로 고조된 최근의 현상에 긴장한다. 국가 간 신뢰를 저버리고 국제 사회의 통념을 비웃으며 감행된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가 가져올 파장을 유리하게 이끌면서 침착하고도 치밀, 집요하게 일본의 국가주의에 대응하는 다각적인 노력을 펼쳐야 할 때다. 모름지기 광복절에 우리들이 비망(備忘)할 일이란 바로 이 같은 일본의 국가주의적 망동의 본질과 실체를 간파하는 것이요, 과거의 역사가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여 미래에 대비할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일이다.

광복절을 민족 자존(自尊)의 날로 기리고, 말 그대로 '광복(光復)'의 참뜻을 되새기자면 우리 모두 가슴 속의 통증을 슬기롭게 치유하면서 오늘의 현실을 내일에 투영해 민족적 진로를 진지하게 사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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