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정부가 전기요금을 손질하면서 300㎾h 넘는 전력을 사용하는 가구만을 대상으로 '누진제'를 적용한 것은 전기를 흥청망청 쓰는 데 대한 '벌금성' 요금을 부과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력 최대수요 시기만을 위해 발전설비를 계속 늘리기보다는 에너지 소비절약을 유도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고, 서민층의 전기요금을 동결하는 대신 그 부담을 상류층에 전가하려고 했던 것만은 이 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문제는 전기를 그 '벌금'을 너 나 없이 내야할 형편이 됐다는 것이다. 노인을 모시거나 수험생이 있는 가정에서는 예외가 없었고, 이번 여름 에어컨을 가동한 일이 있었다면, '보통가정'이라도 대부분 7월분 누진요금 고지서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집집마다 "말도 안 된다"며 황당해 있다.

누진제를 적용할 때부터 이 제도는 올 여름에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 예고 됐었다. 당시 정부는 "한 달에 전력을 300㎾h 초과해 쓰는 가구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수의 6.7%에 불과하다"며, 바로 이 계층에 벌금성 요금을 물린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 수치는 1999년의 전력사용 통계를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고, 2000년에 이미 누진제 기준점을 초과 사용한 가구는 2.1%포인트가 높은 8.8%로 늘어나 있었다. 작년 8월엔, 300㎾h를 초과 사용한 집이 257만2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15.6%나 돼, 1999년 8월 135만1000가구에 비해 무려 90%나 늘어나 있었다. 올해는 유난히 추운 겨울,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었다. 거기다 에어컨 보급량은 800만대에 이르고 있다. 결국 '전기요금 요주의권' 가정은 더욱 늘어났으며, 누진율의 적용대상은 하향 평준화된 셈이다.

이런 사정이라면 정부도 입버릇대로 "에너지 소비 억제를 위해 누진제를 강화한 만큼, 현행 요금 체계를 손질할 계획이 없다"고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 누진 기준점을 상향조정하거나 누진율을 완화하는 등 개선책을 내놓아 각 가정의 고조된 소비부담 불만을 해소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그렇게 할 경우 그만큼 전력을 적게 쓰는 서민층의 전기요금 부담을 늘릴 수밖에 없게 돼, 자칫 '가진 자'편을 드는 꼴이 되고, 에너지소비 합리화란 이 제도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최소한의 손질로 모순점을 개선하면서 한편으로는 누진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 절전 요령 등 대국민 홍보를 강화해 주기 바란다. 솔직히 7월분 고지서를 받아들고서야 누진제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가정도 수두룩했다는 사실도 국민과 정부가 함께 시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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