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쌀 증산정책을 포기한다고 발표한 이후 농촌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쌀농사를 위주로 하는 전업농뿐만 아니라 복합영농을 하는 농민들도 '이러다가 우리의 농업기반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80년대 이후 국내 쌀 소비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재고량이 넘치는 상황에서 정부가 증산을 포기하고 미질(米質) 좋은 쌀 생산 위주로 정책을 바꾸겠다고 방침을 정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증산포기'에 따르는 대안을 마련해 함께 발표하고 이를 실천하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어야 옳다.

8월말 현재 쌀 재고량이 국제식량농업기구(FAO) 권장량 530만섬보다 200만섬이나 초과하고 있는데다 올 추수가 끝나면 1천만섬 이상의 재고량이 쌓일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부보조금 삭감규정에 따라 정부의 수매량을 줄여야 할 판이다. 이런 사정에서 보면 정부의 쌀증산정책 포기는 오히려 늦은 감이 들 정도다. 그러나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 식으로 쌀의 생산량을 감소시켜 남아도는 쌀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방책에는 분명히 문제점이 있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쌀 소비량이 줄어들고 창고에 재고량이 늘어나기 시작한 80년대 중반부터 정부는 이문제를 심각히게 고민했어야 했다. 쌀소비를 촉진하고 미질이 좋은 쌀 생산을 장려하는 정책이 따라야 했지만 다수확 품종 위주로 쌀농사를 짓는 '앞못보는' 농정이 계속되어왔다.

정부가 올 쌀 수확기를 코앞에 두고 뒤늦게 증산정책을 포기한다고 발표한 것은 넘치는 쌀 재고량이 심각한 고민거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발표로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은 농민들은 쌀을 대량 생산해온 쌀 전업농들이다. 그들은 정부의 전업농 육성정책으로 대규모 논농사를 시작하면서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수십억원의 자금을 끌어들여 기계화된 쌀농사를 짓고 있다. 증산정책 포기는 이들을 빚더미 위에 올려놓을 것이 분명하고 농지 가격을 급속도로 하락시켜 농촌 경제를 또한번 휘청거리게 만들 것이다.

증산정책 포기에 따르는 적정하고도 합당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가뜩이나 빚에 허덕이는 우리나라 농촌의 경제는 곤두박칠 칠 것이고 농업기반이 붕괴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정부는 WTO가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농민들의 소득을 보전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묵은 쌀의 처리방안과 쌀소비 촉진을 위한 특단의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증산정책 포기는 그런 선결 과제들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최소한 함께 추진해야 할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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