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이 시간에 누군가 내 신용카드를 쓰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누가 내 이름으로 된 휴대전화를 무한정 사용하고 있다면 어찌해야 옳은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이와 같은 일들이 실제로 도처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진다니 정말 기가 막힐 일이다. 우리의 신용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당국은 무엇을 했는가.

자신도 모르는 신용카드와 휴대전화가 무차별적으로 발급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엔 우리의 신용사회가 그 뿌리를 온전히 내려 뻗지 못한, 미성숙된 전근대적 사회 현실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신용사회로 가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구태의 무신뢰, 무원칙, 무책임 사회가 그대로 지속돼 사회적 약속을 배반하고 공공적 계율을 파기하는 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거의 야만적인 일들이 단속(斷續)적으로 벌어지는 것이다. 어제는 갑남(甲男)이 쓰지도 않은 카드 대금 수백만 원을 납부하라는 독촉장이 날아와 경악하고, 오늘은 을녀(乙女)가 자신도 모르는 수십만 원의 통신료를 요구받아 억울해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이런 사회를 신용사회라 이름할 수 없다.

그러나 일단 사안의 핵심을 살펴보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이 사건은 카드사나 이동통신회사들이 가입 실적 등 당장의 이익에만 눈이 어둡기 때문에 발생했다. 계약서 작성 당시 주민등록증만 확인했더라도 이런 식의 '명의 도용 사기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대체 본인인지 확인하는 절차 하나 없이 주민등록번호 하나만으로 가입이 가능한 제도가 어디 있는가. 또 하나, 개인 정보 유출이 심각한 지경이다. 엊그제 신상 정보를 신용카드사에 팔아넘긴 인터넷사이트 운영업자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로부터 개인 정보를 입수한 회사는 카드 발급을 강요하고, 또 유출된 정보를 악용한 신종 범죄가 급증해 신용사회가 정착도 되기도 전에 무너질 상황이다.

개인 정보 유출과 이로 인한 피해가 끝 없이 계속되자 며칠 전에 검찰이 "전담 검사를 지정해 지속적으로 단속을 벌이겠다"고 했지만 "개인 정보 제공자만 처벌하고 제공받은 사람은 처벌할 수 없도록 돼 있는 현행법 개정도 법무부에 건의하겠다"고 해 법적 제도적 오류나 모순이 상존함을 내비쳤으니, 이에 대한 즉각적인 재검토에 들어가야 마땅하다. 동시에 현재 유출 정보를 이용한 사기 사건으로 신용불량거래자로 몰린 피해자들이 범죄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구제해야 한다. 물론 개인 정보를 유출하거나 이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 개인이나 회사 등 모든 '신용사회의 적'들을 끝까지 추적해 엄하게 처벌하는 전례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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