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쟁 분위기를 의식하면서 북한이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내 놓은 논평은 '미국에서 동시다발 테러사태에 대한 군사적 보복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으나 이것은 커다란 의혹과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방송은 "지금 세계 사회가 미국의 군사적 보복이 초래할 엄중한 후과(부정적 결과)에 대해 커다란 우려를 갖고 주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비슷한 시간에 서울에서는 남북 장관급 회담 결과물인 '남북 5 개항 공동보도문'이 발표됐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미국 테러 사건을 보는 관점과 '공동보도문' 합의 내용 사이에서 북한이 적지 않은 인식의 차이를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그 차이란 북한이 미국에 '의혹' '경계심' '우려감'을 갖는다는 것과, 그럼에도 금강산 육로관광 회담, 이산가족 방문, 남북 경협회담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 사이의 '의식의 단절'을 말한다. 말을 바꾸면 서로 긴밀히 연관된 두 사안에 각각 별개의 잣대를 댐으로써 북한이 남북 합의의 실천을 의문케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의 미국에 대한 불신이 증폭됐고, 미국 역시 '불량국가'로서의 북한을 경계하는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등 묵은 갈등을 해소 못한 연장선상에 놓인다.

그러나 이제 북한은 종래의 '봉남통미(封南通美)'나 그 반대 방식 등 대남 관계를 전술·전략적으로 접근하려 해서는 안 될 시점에 왔다. 한반도 긴장 완화 및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북미회담 속개와 동시에 남북교류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사안에 갖는 북한의 '의식의 단절'은 결코 바람직할 리 없다. 북한은 지난 2월 제3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이후 거의 모든 접촉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그런만큼 또 다시 남북 관계를 일방으로 몰거나 '미국 콤플렉스'로 모처럼 조성된 화해 분위기를 냉각시켜서는 안 된다. 지금은 오직 북측이 두 사안 모두를 잘 아우르는 이성적 태도를 분명히 하여 보도문의 실천 의지를 보여야 할 때다.

특별히 이번 제5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선 '남북 관계 정상화에 물꼬가 텄다' 할 정도로 남북 양측이 적극성과 실사구시 자세로 접근해 합의를 보았다. 이에 따라 '3대 핵심 의제' 이행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 보인다. 곧 이어질 금강산 육로관광 당국자 회담, 제6차 장관급 회담, 경제협력 추진위원회 등에서 구체적 실천안이 확정되면 남북교류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부디 우리의 기대가 무산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가시적 결실 맺기'야말로 북한의 '테러 후과에 대한 우려'를 넘을 수 있는 중요한 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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