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정취에 푹 젖었던 주말이었다. 그러나 요즘 날씨가 너무 좋아 탈이다. 비가 안 와도 너무 안 와, 용수 수요가 일년 중 가장 적은 때에 전국이 물 걱정이다. 이달 들어 그래도 비다운 비 맛을 본 지역은 강릉. 대관령. 동해. 태백 지방. 그외 춘천을 비롯한 중부 지방 전역의 총 강수량이 평년의 10%가 채 안 되는 10㎜ 미만이다. 기상청은 9월말까지는 전국의 강수량이 평년수준을 밑돌아 중부지방의 아침저녁은 서늘하고 낮 기온은 평년 보다 올라가는 맑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 봤다. 이렇게 되면 이미 바닥이 말라붙어 댐마다 저수율이 크게 떨어져 내년 걱정을 안 할 수 없고, 진작부터 한발을 겪고 있는 김장 채소를 비롯한 밭농사 피해도 심각해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걱정은 왕가뭄 뒤에 폭우, 그 뒤에 왕가뭄으로 이어지는 올해의 지독한 기후변덕이 예고하는 것이 '겨울의 기록적인 폭설이나 한파 등 또 다른 날씨 피해'는 아닌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전국 10대 다목적댐의 저수율은 이맘때 57.8%는 돼야 평년치가 된다. 그러나 현재 저수율은 40.8%밖에 안 되고 있다. 올해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이 한차례도 없었고, 늦장마도 지지 않아 일찌감치 비워 둔 댐이 빈 그릇이 된 셈이다. 이대로 겨울을 나면 내년 봄 용수난은 말할 것도 없고, 또 봄 가뭄이 겹치면 사상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게 뻔하다. 올 봄 '90년 가뭄'에도 그래도 도시나 공장은 물 걱정을 덜했고, 농촌만의 고통으로 끝났던 것은 댐들의 저수량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년은 월드컵의 해이고, 그 기간이 갈수기라는 점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가을에 웬 물 걱정?'하고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농촌은 이번 가을 가뭄 피해가 불가피할 것 같다. 콩, 조, 참깨 등의 밭작물이 토양의 수분 부족으로 알맹이가 여물지 못하고 있는 정도라면, 무 배추 등 김장채소 사정이 어떨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9월 송이를 따기 위해 1년을 기다린다'는 산간주민의 최대 소득원인 그 송이 사정도 비관적이다. 양양 지방은 엊그제 비가 내렸지만, 양구, 인제, 홍천 등 내륙 주산지 주민들은 "소나무 밭에서 먼지가 펄펄 나는 데 무슨 송이냐?"며 올 추석 대목을 놓치는 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렇다고 앉아서 이 가뭄 피해를 고스란히 당할 수는 없다. 지난 봄 수 십리 밖에서 물을 끌어 모내기를 했던 것처럼, 이번 가을 가뭄도 기필코 극복한다는 인내와 지혜가 지금 필요하다. 행정도 지난봄 그랬던 것처럼 가뭄현장으로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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