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제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 지속돼 온 향토문화축제를 성찰적으로 재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즉 율곡제를 보면 우리 향토축제의 전반적 문제점과 이의 극복을 예감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엊그제 열린 율곡제 제전위원회에서 일부 위원들이 '제전 본질 또는 율곡 정신과 맞지 않는 행사는 과감히 정리하고 본류에 충실한 행사를 짜임새 있고 품위 있게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모든 지역축제의 보편화 및 평준화를 반성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본격적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난 7 년 동안 다른 지역의 축제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은, 지역적 특성이라든가 적어도 '왜 이 문화행사를 해야 하는가' 하는 당위 혹은 정체성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 고뇌 없이 거의 연례행사처럼 치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이 행사가 저 행사 같고, 이 지역의 축제 만들기가 저 지역에서 행해진 기왕의 행사와 똑같은, 그리하여 결국 어슷비슷한 지역축제를 남발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이제 이런 축제는 율곡제 제전위원들이 반성하듯이 재점검, 정리, 정제(整齊)할 때가 됐다고 본다.

또 축제는 한 사회의 문화 역량이 집약된 이벤트임에도 단체장의 선심 행정으로 인한 예산 낭비를 부채질할 따름이라 비판받는 수준이라면 그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옳고,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수백만 원의 적자를 보는 행사의 지속 여부를 고민하는 것이 도리이다. 강원도와 각 시군은 이웃 하남시의 환경박람회가 무려 180억 원의 적자를 낸 경우와 전라남도가 지역축제 34 개 가운데 6 개를 없애라는 권고 공문을 보낸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지역축제의 새로운 기능 및 가능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예컨대 빙어축제 한지축제 송이축제 메밀축제와 같은 강원도에서 비교적 성공을 거둔 지역축제가 모두 축제의 특성을 살렸기 때문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축제문화의 사회·경제학적 메커니즘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병행돼야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왜 율곡제인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고심하는 율곡제 제전위원들의 자문을 축제의 보편성과 일반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정체성을 찾으려는 의미 있는 행동으로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역축제가 문화유통시장과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중심축으로 인식되는 '문화의 세기'인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렇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