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는 에로티즘이지만 동해는 로망티즘이다. 서쪽 바다는 늘 저녁일 것이나 동쪽 바다는 항상 아침이다. 서해가 여성성이라면 동해는 남성성이다. 서해가 여행의 종착점일 때 동해는 비로소 여행의 출발점이다. 서해가 일몰이고 침잠이라면 동해는 일어섬이요 희망이요 환희다. 동해의 태생적이고도 운명적인 이런 매력과 특징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무심하게 대해 왔음이 분명하다.

엊그제 '아름다운 동해안 만들기' 계획의 최종 보고회가 열렸을 때 김진선 지사는 "지중해와 같은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가꿔 동해안 경관의 경제적 자산 가치를 높이고 관광 경쟁력을 강화하자"고 했다. 이 말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완상(玩賞)만이 아니라 경제 가치가 된 지 오래임에도 동해안이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했다는 역설적 증언과도 같다. 그래서 늦었지만 '아름다운 동해안 만들기'는 의미 깊다.

계획대로 20 년이 지나면 6 개 시·군의 동해안 경제 가치가 지금에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질 것이다. 경관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활력과 개성이 넘치는 항구도시들이 어항 해수욕장 횟집 등의 주제로 개발되고,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동해안에서 감동을 맛보며 긴 시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렇게 되도록 만들자는 게 이 마스터 플랜의 골자다.

그런데 여기에 드는 5 년 동안의 비용이 겨우 49억 원이다. 이 돈으로 동해 묵호∼어달∼대진 간 횟집명소거리 조성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동해안'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니 좀 황당하다. 며칠 전에 발표된 '접경지계획'은 10 년 간 약 10조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이었다. 이의 실현성에 의문한 것과 똑같이 1 년에 1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동해안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접경지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의문은 동해안에선 "겨우 그걸로?"라는 물음으로 바뀌게 된다.

관광도 글로벌 스탠다드 시대라 영세한 동해안 횟집 해수욕장 어항 등에 수천억 원의 돈을 들이부어도 고급화하기와 '아름답게 하기'가 힘들다. 또 동강 보전을 위해 조사와 세미나를 거듭했음에도 실천되지 않아 동강댐 논란 3 년이 지난 지금 엄청난 오염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도 의식된다. 따라서 문제는 적정한 예산 편성과 강한 실천 의지이다. 이제 계획이 섰으므로 동해안을 정말로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동해안만의 낭만과 특성을 알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 계획은 로망티즘일 수 있으나 현실은 엄혹하다. 실천 문제가 주목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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