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는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하고, 같은 뜻의 말을 노자는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하고 있다. 앞의 것은 '지이불언(知而不言)'을, 뒤의 것은 '지자불언(知者不言)'을 푼 것이다. 전자는 유연하고 인간적이며, 후자는 강직하고 초월적이다. 그러나 둘 다 "말하지 않겠다"는 것으로는 같다.
 말하고 싶은 것을 참는 이렇게 높은 지혜가 필요함을 잘 알면서도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 때가 있는데, 요즘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말은 이렇게 이해돼야 할 것이다. 수도권 규제 해제에 대한 당위와 그에 대한 반대론자들의 논리 또는 변설이 그렇다.
 특히 교수 연구원 정치인 같은 지식 발쇠꾼들의 말이 대단하다. 그런데 이들의 말을 듣다가 갑자기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속에서 울컥 솟아났는데, 그러나 예의 장자와 노자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떠올리며 참으려는 참에 머릿속에 느닷없이 저 15 세기 사람 유응부(兪應孚)가 나타났다.
 때는 1456년 세조 2년, 유응부는 그때 말을 하지 않고 행동하려 했다. 성삼문 박팽년 등이 단종 복위를 모의할 바로 그때다. 이들은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불러 놓고 연회하는 날에, 유응부와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을, 2품의 무관이 칼을 차고 임금을 호위하던 임시 벼슬인 별운검(別雲劒)으로 선정하여 세웠다가 그 자리에서 세조를 시해하고 단종을 복위시키기로 이미 계획을 세워놨다.
 그러나 때마침 세조는 운검을 세우지 않도록 명한다. 유응부가 그래도 일을 진행하려 하니 성삼문과 박팽년이 "공의 운검을 쓰지 못하게 한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만약 이곳 창덕궁에서 거사하더라도, 혹시 세자가 경복궁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온다면 일의 성패를 알 수 없으니 뒷날을 기다리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하고 말린다.
 이에 유응부는 "이런 일은 빨리 할수록 좋은데, 만약 늦춘다면 누설될지 모르오. 왕의 우익(羽翼)이 다 모여 있으니 오늘 이들을 모두 죽이고 단종을 호위하고서 호령한다면 천재일시(千載一時)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니 결코 기회를 놓쳐서는 아니 되오!" 하였다. 이런 왕년의 반정(反正) 모의 장면을 떠올리며 '거사해야 옳았다'는 식의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과연 유응부의 우려대로 배반자가 생겨 결국 거사에 실패하여 붙잡힌 뒤 곧 국문이 시작되는데, 불에 달군 쇠로 지져지고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문을 받던 무장 유응부가 눈을 부라리고 일갈한다. "사람들이 서생(書生)과 일을 도모치 말라더니 과연 그렇구나! 용기와 수단이 못 미치는 자들과 꾀하려 한 내가 진정 어리석도다!" 바로 이 말이 떠올랐다는 말씀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 움직임을 과연 어떻게 막을 것이냐는 토론회가 연일 열리고 있다. 그러는 중에 재작년에 '평택지원특별법'으로 규제의 한 둑이 와르르 무너졌고, 엊그제 '주한미군공여지역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 시행령이 의결돼 9월에 곧장 발효된다. 사실상의 수도권 규제 해제는 이미 이렇게 시작됐고, 이후 강원도엔 어떤 기업체도 오지 않을 것이니, 강원도 사람들은 죽을 판이다.
 말 많은 서생들의 그 우렁찬 태산에 가보니 쥐 한 마리가 나올 따름이다. 서생들의 추상적 거대 담론 어디에도 강력한 실행 실천 계획이 안 보이더란 말이다. 소위 지식인들의 자잘한 논리에 비애감이 느껴져 이 경우 톨스토이 같은 비전론자(非戰論者)보다 제논이나 훔볼트 같은 무정부주의자가 되고 싶더라 하는 얘기다. 세 치 혀 굴리기는 그것 그대로 이어가되, 이쯤에서 수도권 권력을 한 방 먹이는 등의 강한 실천력을 보이는, 그런 기개를 가진 유응부 같은 무장이 어디 없느냐 하는 말씀이다.
 오는 주말엔 영월 창절사(彰節祠)에 다녀와야 겠다. 단종이 누운 장릉에 들른 뒤, 창절사 사육신의 위패 앞에 무릎을 꿇고, 특히 기골이 장대하고 무예에 능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한 재상으로서 끼니를 거를 정도로 청렴하였던 절의파 유응부 중추원동지사에게 큰절을 하고 와야겠다. 때를 놓치면 어쩔려고 과감한 구체 행동 없이 여기저기서 서생들, 계속 말만 할 터인가.
 이광식 논설실장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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