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식 논설실장 misan@kado.net

 얼마 전 춘천시내 한복판에 있는 춘천문화예술회관에 갔다. 도립무용단이 창단 6년 만에 무대에 올린, 말하자면 제1회 공연이라 할 정기공연 '새벽의 땅'을 보기 위하여. 강원도의 설화와 전설과 인물들 그리고 강원도의 자연과 인생과 생각들이 조화롭게 모여 있는, 서사가 있는 한 편의 춤 공연을 보며 우리는 감격하여 잠시 몸을 떨었다.
 며칠 지난 이 순간에도 사실 공연을 막 보고난 사람처럼 그 감동은 별로 사라지지 않는다.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강원도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창작 예술작품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식의, 꽤 오래 다져온 강원도 촌놈의 강원도적 패배의식을 완전히 깨부수는 좋은 작품이었으므로 감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더욱 내면화하는 모양이다.
 우리가 서구 문화를 말할 때 또는 서양 문화예술 작품의 그 물밀듯한 도래 혹은 강습(强襲)을 얘기할 때 양자간 수준의 차이를 내세우곤 한다. 우리가 새로운 풍(風) 혹은 룩(look)을 말할 때 자본력을 들춰내기도 한다. 자본의 그 발칙한 도발이나 도저한 힘을 떠올리고 우리들 문화 자본의 열등함을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날,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강원도립무용단의 춤 공연 '새벽의 땅'을 보았을 때, 그 동안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편향돼 있는지, 이미 알고 있던 우리들 관견(管見)의 그 속 좁음이 어느 정도였는지 새삼 부끄럽게 느껴졌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이 문제가 아니었고, 표현해내는 기술도 문제될 게 없었다. 조금도 과장 아니게, 추호의 지나침이 없이 우리는 도립무용단의 의지, 의욕, 창작욕, 성취욕, 의식의 수준 높음 등이 잘 모아져 작품의 완성도에 조금도 손색없는 꽤 흥미롭고 재미있고 예술성 높은 공연을 창조해냈음을 증언할 수 있다.
 예컨대 원주 한지(韓紙)가 프랑스에서 그곳 예술인들을 놀라게 한 것과 같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강원도 사투리가 주요 메뉴로 올라섰듯, 강릉단오가 세계인의 축제로 자리매김하듯 '새벽의 땅' 같은 춤을 콘텐츠 웨어 삼아 강원도의 문화적 줏대를 내세워도 좋다는 판단 같은 것을 증거할 수 있다.
 사실 우리 만일까 보냐. 고백하라, 대부분 강원도 사람들은 강원도적 그 표현의 어눌함에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는가. 서울에서 강원도 사람이라 고백하면 그 순간 그 예술인은 예술가로서의 명을 다하게 되지 않던가. 시인 허초희와 화가 신사임당 그리고 춤의 달인 최승희가 있었음에도 강원도는 자고이래 모든 부문에서 그러하듯 예술에서도 그야말로 촌스러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이런 퇴영적 분위기는 우리가 우리의 예술 의식을 스스로 때리고 부수고 무너뜨린 결과다. 무슨 말인가? 강원도 사람이 등장하는 예술 작품을 보려 하지 않았고, 우리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성악가 누구누구'라는 식의 수식이 붙으면 껌뻑 죽어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스스로 찾아가 관람했으며, 우리는 예컨대 그것이 미술이든 음악이든 연극이든 그리고 아아, 마임이든 그것이 강원도 것이라면 애써 낮춰보고 외면하려는 정말 고약하고 못난 짓을 해 왔다.
 말하자면 '강원도적 감동'을 우리 스스로 무화(無化)시킬 때, 그 때 강원도 문화는 불어오는 외래 공연물과 전시물에 주눅 들어 싹마저 문드러지고 만 것이다. 바로 이것, 이것 그대로 강원도적 촌스러움이다. 이데올로기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정신도 없고, 그리하여 영혼도 생명도 없는 이 슬프고도 안타까운 강원도 의식의 가난함. 이 망할 놈의 문화 편식증!
 그 날, 도립무용단의 '새벽의 땅'은 공짜였다. 서울에서 온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돈 들여야 했지만, 이번 것은 그렇지 않았음에도 공연단의 가족과 학생만 왔을 뿐 그동안 내로라하던 지식인들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그 날, 강원도 예술은 홀로 화려하고 고고했으되 주변은 춥고 외로웠다. 원주에서 강릉에서 그리고 강원도 곳곳에서 다시 공연되고 마침내 서울로 가 강원도 예술의 진수를 맛보이는 것으로 우리는 도립무용단을 아프게 한 우리들의 비례(非禮)를 용서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우리의 귀엔 그날 공연 중 아무도 그렇게 하라 하지 않았음에도 긴 시간 울리던 그 환호그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