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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정약용 그리고 흙탕물

남궁창성 편집부국장·사회부장

2006년 10월 02일 월요일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춘천을 사랑했다. 강진유배가 끝난후 춘천을 두번 찾았다. 모두 물색이 곱고, 신록이 짙어가는 봄날이었다. 1820년 음력 3월은 형 정약현을 따라, 1823년 음력 4월은 맏아들 학연과 동행했다. 조카 며느리와 손자 며느리를 얻기 위해 협곡을 거슬러 춘천을 찾았다. 다산은 북한강을 산수(汕水)로, 남한강을 습수(濕水)로 불렀다. 북한강은 산이 많은 북쪽에서 발원해, 남한강은 낮고 습기 많은 땅에서 흘러 들었다. 산수와 습수는 다산이 어린시절을 보내고 노년을 지낸 고향 남양주 말고개(馬峴)에서 합쳐져 열수(冽水) 한강을 이뤘다.
 순조 23년 음력 4월 15일 새벽. 병풍, 휘장, 이불을 챙겼다. 붓, 벼루, 책도 실었다. 약탕기, 반상기에 죽솥을 갖춰 춘천을 향해 배를 띄웠다. 날씨는 맑았다. 봄바람의 싱그러움이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청평에서 첫 밤을 묵었다. 다음 날인 16일은 가평 안반촌에서 잤다. 17일 아침 다산을 태운 배는 물안개를 헤치며 물살을 거슬러 올랐다. 강원과 경기의 경계인 석지산(山)과 곡갈탄(灘)을 지나자 춘천 서면 당림리의 마당촌이 손짓을 했다.
 다산은 마당촌에서 점심을 먹고 등선폭포와 현등협(懸燈峽)을 지나 의암댐 바로 위 신연에 당도했다. 하루저녁 쉬자는 사공의 말을 물리치고 봉의산 뒤편 소양정 아래에 배를 댄 것은 황혼이 물드는 17일 저녁이었다. 저멀리 우두벌에서 초가의 밥짓는 연기가 우두산을 맴돌고 있었다. 고향 말고개에서 춘천까지 3일동안의 뱃길이었다.
 다산은 3일동안 소양정 아랫마을에 머물렀다. 소양정에 오른 다산은 "새 나는 저 밖에 하늘은 다하려 하고/ 시 읊은 끝에도 한은 그치지 않아라. 산들은 북쪽에서 꺾어 들고/ 강물은 절로 서쪽으로 흘러 가는데/ 기러기 내려앉은 모래톱은 아득하고/ 배 돌아가는 옛 기슭은 그윽도 하다. 어느 때에야 세상 그물 벗어 던지고/ 태평세월 틈타 여기에 거듭 놀까"하고 심란한 마음을 노래했다.
 다산은 20일 저녁 물길 대신 말을 타고 길을 재촉했다. 용산마을 문암서원에 행장을 풀었다. 온돌에 장작을 지펴 따뜻했다. 화천을 다녀온 23일 발길을 돌려 문암서원을 거쳐 뱃길로 저녁나절 소양정으로 되돌아왔다. 집에서 일하는 종이 노를 젓는 배에 몸을 실으니 가랑비가 후둑후둑 떨어졌다. 동심원의 물 무늬가 수면에 번지고 사위에는 안개와 구름이 일었다. 경치가 자못 그윽했다.
 다산은 24일 아침나절 행장을 챙겨 소양정 아래 배를 풀었다. 귀향길이었다. 뱃머리에서 바라본 서면의 맑고 고운 모래톱이 햇살에 눈부셨다. 현등협을 지나 정족탄(鼎足灘)에 이르자 배가 흔들렸다. 강물 속에 비친 검은 돌이 바둑돌처럼 깔려 있다. 안보리를 지나는데 양쪽 산기슭의 소나무가 빼곡하다. 물이 줄어든 여울을 나무꾼들이 건넌다. 청평이 손에 잡힐듯 가깝다. 백성들이 강변 자갈밭에서 사금을 캐 채로 일고 있다. 대성리를 지나 집에 당도하니 25일 저녁이다. 춘천 봄 나들이를 정리한 산수일기(汕水日記)를 마치니 음력 4월28일이다. 다산은 13년후 1836년(헌종 2년) 남양주 와부읍 능내리 말고개 고향땅에 묵힌다.
 춘천 흙탕물이 2개월 이상 호반의 도시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서면의 금빛 모래, 정족탄의 맑은 물과 바둑 돌, 안보리 산기슭의 푸른 소나무, 청평의 사금 캐는 백성들…. 183년전 다산이 그린 북한강의 모습이 꿈결에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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