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록 서울본부 정치부장

 열린우리당이 심각한 내홍에 휩싸여있다. 마치 폭풍전야 같은 불안감도 감돈다. 여당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궁색하다. 위기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창당 이후 40번 치른 재보궐선거의 전패, 혹은 지난 5·31 지방선거의 참패 같은 것이다. 10%대 초반에 머물고 있는 당지지도도 위기감을 배가시켰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주역들인 당 중진들은 이미 당해체와 신당논의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도 선긋기에 나섰다. 어차피 난파선에 동행했다면 함께 간다고 서로 도움될 리 없다는 판단들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당의장을 지낸 정동영 의원은 최근 장기간에 걸친 독일연수를 마친 뒤 ?열린우리당 창당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실패를 자인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창당정신은 돈과 지역주의를 탈피한 정치개혁의 실현이다. 또 그 이념은 참여정부를 만들어낸 원동력이기도 하다.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이들은 민주당을 박차고 나갔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정쟁 속에서 집권여당으로 등극했다. 이들은 그것을 지역주의 청산과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표출된 것이라며 어깨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당이 된 이후에는 추락의 연속이었다. 승리에 도취된 열린우리당은 명분과잉에 빠져들었다. 국가보안법과 언론관계법, 사학법은 물론 과거사 규명, 강남정책, 재벌정책, 한미관계, 남북문제 등등 사회 곳곳에 전선을 형성했다. 일부 전선에서 후퇴조짐이 보이자 노 대통령까지 일선에 나서 독려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그러나 결과는 선거패배와 당분열로 나타났다. 개혁을 명분으로 주위를 돌아보지 않은 결과는 참담했다. 정부의 고위인사들조차 ?나폴레옹이 전선을 유럽전역으로 넓히다 워털루에서 참패한 꼴"이라고 혀를 차는 지경까지 갔다.
 상황이 여의치않자 이들은 평화세력 연대니 민생경제니 하는 말로 다시 신당을 창당한다고 앞다퉈 나서고 있다. 그러면서도 창당 당시의 시대정신은 유효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창당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창당정신을 다시 기억해내야하는 국민들로서는 2년 동안 이뤄낸 성과가 무엇인지 또는 뭘 했는지도 제대로 알기 전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맞이해야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흔히 대중사회가 진행될 경우 그 속에서 민주주의의 위기가 시작된다고 한다. 물론 대중의 자발성을 인정하는 시각이 있기도 하지만 정서적으로 동질화 경향을 보이는 대중은 지배자의 심벌조작에 의해 쉽게 움직이는 존재로 이해되곤 한다. 열린우리당의 창당 주역들이 사회적인 동의나 논의절차 없이 그들이 자작(自作)한 맞춤형 시대정신을 또다시 국민들에게 내놓는다면 그것을 또다른 심벌조작이라고 비난해도 달리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영국의 처칠은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영웅이 역사를 만들어 내는가, 아니면 그들은 단지 역사의 흐름을 주도하는 거대한 집단의 선두에 서 있을 뿐인가?"를 고민했으며, 피아간의 엄청난 희생을 지켜보면서 ?승리의 찬란한 빛은 더이상 지휘관의 투구를 비추지 않는다"라고 일개 영웅보다는 시대 상황과 축적된 경험을 강조했다.
 우리의 정치로 돌아가자. 논란의 여지 없이 경제가 어렵다 혹은 서민들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말은 여·야 모두가 동의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러나 신당창당을 내세우는 열린우리당의 주장을 채로 걸러내면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영웅만들기에 빠져들고 있는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재의 논의는 어지럽고 제시되는 단어들도 호사스럽다.
 80년대에 읽은 세계적인 시사잡지의 한 유머란에는 맥아더의 ?노병은 죽지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를 패러디해 ?노병은 죽지않는다. 죽는 것은 애매한 젊은 병사 뿐이다'라고 적고 있었다. 우리의 정치인들은 어떠한가. 혹시 사라지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사이에 정말 죽어나는 것은 서민들 아닌가.
 그들이 가장 치열한 21세기의 문을 주도적으로 열어제쳤다고 믿는다면 끝까지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창당정신이 유효한데도 국민들에게 버림받았다면 그 책임을 먼저 지는 것이 당연한 순리다. 그들이 허공에 난사(亂射)한 탄환이 전선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데 그것은 없던 일로 하고 다시 짐을 꾸리자면 동의할 국민들이 얼마나 있을 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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