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개통된 철원 문혜리∼잠곡리 지방도로는 시간단축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부 동서횡단도로의 삽질이 시작됐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 횡단도로는 접경지 일대의 개발촉진과 함께 DMZ와 민통선 일대의 자연, 역사, 문화적 잠재가치를 자원화 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구상돼왔다. 따라서 그 도로는 일반 신설도로와 달라야 했다. 예를 들면 개발소외지역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자연하천, 수림, 경관을 보전하기 위해 일부러 길을 구부렸다던가, 터널을 뚫었다는 등 DMZ와 민통선의 자원화 개념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도로가 그런 밑그림이 없었다면 일단 개발촉진 기능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원화 기능은 놓친 것이다. 물류유통 거리를 단축하기 위해 잠재자원을 포기한 결과 즉, 개발과 보전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공존의 묘는 못 살렸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앞으로 이 도로에서 연결돼 동해안으로 갈 '민통선 도로'는 그런 고민을 하면서 닦지 않으면 안 된다. 어렵게 정부 돈을 얻어와 수년씩 걸려 주민숙원이 풀리는 것을 놓고 '자연환경을 보전했느니, 아니니' 하는 말 자체가 사치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뚫고 보자'란 성급함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의 실례라고 할 만한 도로가 엊그제 '한국 최고의 비경' 내린천에서 개통됐다. 인제 미산(美山)은 이름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여기서 홍천 율전까지 오십리 계곡은 오대산에서 흘러오는 내린천이 빚어놓은 천혜의 비경이어서 늘 '가고싶은 피서지 1순위'로 각광을 받아왔다. 바로 오지개발이란 명목으로 이 계곡에 2차선 도로를 뚫으면서 흉칙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검은 바위와 영산홍 꽃밭이던 강변은 석축으로 직선화 됐으며, 전설을 담고 있던 깊은 소(沼)는 이제 신비롭지 않게 됐다.

그 계곡에 길을 뚫을 게 아니라, 그 계곡의 접근로를 뚫어야 한다던 비판이 결국은 옳았다. 그래야 그 계곡의 부가가치가 높아지고 민박집도 더 잘 수 있는 잠재자원 개발이 되기 때문이다. 인제 진동리 조침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는 백두대간 횡단로가 착공됐다. 문제는 한국 최고최대의 원시림을 관통하는 이 도로도 그 숲이 갖는 잠재가치가 고려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물론 점봉산, 박달령 남쪽의 조침령은 산림청이 지정한 '원시림'권역밖이며, 이미 양양 양수댐 상부저수지 개발로 도로개설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진동리는 과거 정부가 유역변경식댐 건설계획을 포기했을 만큼 자연생태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원시림 마을'이다. 바로 그 잠재가치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이 도로의 과제이다. 사실은 강원도의 모든 신설도로의 과제도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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