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을 이해하는 인문적 방법

 지방분권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인식 주체에 따라 각기 다른 창문으로 분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 한 방식으로 인문적 인식의 틀이 제시될 수 있겠다.
 즉, 인문적 방법으로 분권을 말해 보자는 것이다.
 한 사내가 있었다. 이 사내는 백여 기병을 앞세워 원주를 출발하여 강원도 남부지방을 돌아다녔다. 그가 대관령을 넘어 강릉에 입성했을 때, 강릉사람들은 그에게 '장군'이라는 칭호를 줬다.
 그 당시 지방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자에게 붙이던 '장군' 칭호를 얻은 사내는 바닷가에 나가 앉아 긴 시간 고민에 빠졌다. 이를 테면 이런 것.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 뒤에 사내는 이념적으로 미륵사상을, 정치적으로는 동방제국 건설의 뜻을 세운다. 그리하여 강릉에서 군사를 나눠 받아 북진하고 다시 서진하여 사내는 오늘날 철원 지방에다가 '태봉국'을 건설해 동방대제국의 기초를 닦게 된다. 짐작하셨겠지만 그 사람이 바로 궁예다. 궁예는 김순식으로 대표되는 강릉호족을 비롯해 강원도 서북지방호족들의 지지를 얻어 한반도 중심에서 나라를 건설하게 된다.
 결국 궁예는 한 지역의 권력인 이른바 지방호족의 지지와 성원으로 국가 권력을 만들어낸 것인데, 쿠데타로 이 태봉국을 뒤엎고 고려를 건국한 왕건 역시 황해도 지방호족의 지원을 받아 뜻을 이뤘다. 왕건의 경우 얼마나 절실했으면 무려 29 명의 호족의 딸들과 혼인을 했겠는가. 태봉과 고려는 이렇게 '호족연립정부'였던 것이다.
 분권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 느닷없는 궁예와 왕건은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부터 천여 년 전 나말여초에 강원도에서 벌어진 이 사건 이후, 놀랍게도 한반도에서는 지방호족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후 우리 역사는 붕당, 세도가, 반정훈구세력, 신진사대부, 외척 등이 서로 밀고 당기며 중앙정치를 농단했지 지방권력이 논의의 중심에 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는 16 세기 이래 잠시 신성로마제국이 명목상 중앙권력으로 행세했을 뿐 유럽이 단 한 차례도 중앙권력의 힘이 행사되지 않았던 것과 비교되는 특이한 역사 전개다. 일단 유럽이 역사를 주도한다는 관점 아래, 결국 세계사는 지방권력이 만들어 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 날의 지방분권 논의는 저 강원도 호족 이야기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다음, 천 년의 침묵 이후 발생한 최초의 사건이다.
 이런 차원에서 지방분권을 논하는 시기에 우리가 특히 강원도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은 특별하고도 즐겁다. 분권 논의가 강원도에서 특별히 활발한 오늘의 현상은 그러므로 우연이 아닌 것에 더하여, 앞으로 강원도는 더욱 반(反)분권론이나 대(大)수도론에 확고한 대응 전선을 구축하여 견결히 싸워야 할 당위와 책무를 짊어져야 마땅하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역사에 천 년 이상 분권 논의가 없었던 만큼의 분권 인자가 현재의 한국인에게 편재하지 않으므로 역시 가장 강력했던 지방권력의 중심지 강원도, 강원도사람들이 사명감을 갖고 분권 쟁취를 위해 나서 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전국 시민단체들이 '대수도론'에 저항하기 위해 전국 투어 및 순회토론회를 열고 있는데, 강원도의 시민단체 '지방분권국민운동'과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또한 전국 100여 개 단체의 활동에 동참, 아니 전면에 나섰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동안 숨어 있던 강원도의 그 역사 오래되고 강고한 분권 인자를 찾게 된다.
 강원도의 시민단체가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최근에 결성한 '수도권과밀반대전국연대'는 곧 '비수도권 총연대'다. 이들의 활동이 수도권 논리의 부당함을 드러내고, 분권 분산 국토균형발전적 시각만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음을 천명하는 계기가 될 것을 믿어봄 직하다.
이광식 논설실장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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