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 편집부국장 겸 경제부장

 필자는 1945년 해방을 전후해 태어난 이른바 '해방둥이'들을 참으로 존경하고 좋아한다. 너나없이 고단하고 힘든 역사를 헤치면서 그들만큼 선 굵은 족적을 남긴 세대가 또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들이 태어나던 때 대한민국은 극빈국이었다. 모든 것을 파괴한 6·25전쟁이 끝나고 1953년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국민소득 통계를 냈을 때 1인당 GNP가 57달러,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1, 2위를 다툴 정도였다고 하니 아마 그들의 대다수는 입에 풀칠하는 것이 하루 낙이었을지도 모른다. 스무살 성인이 될 때까지 지금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풍찬노숙의 성장기를 보냈을 터이다.
 1965년은 그들이 성인이 되던 해. 그해 한국은 월남전 파병을 시작했고 가장 왕성한 20대였던 그들은 냉전이 낳은 불행한 전쟁에서 사선을 넘나드는 주인공이 돼야 했다. 1973년 완전 철수 때까지 파병 한국군이 무려 31만명에 달한다고 하니 최소 열에 서넛은 베트남으로 옮겨가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전쟁에서 그들 세대는 공식 기록만으로도 전사 5000명, 부상 2만명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만명의 고엽제 피해자들을 비롯해 부상자들이 대물림되는 신체·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으니 그 인고의 깊이를 실로 가늠키 어렵다. "미국의 용병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들의 희생과 '불행한'월남전 '특수'가 경제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전쟁이 끝난 뒤 살아 돌아온 그들은 이번에는 더 멀리 취업전선으로 날아가야 했다.
 공교롭게도 월남전이 끝나는 시기와 맞물려 우리기업들의 중동 진출이 본격화 됐고, '사지(死地)'에서 돌아와 한 가정을 꾸리게 된 그들은 열사의 땅에서 극한을 이기는 일꾼 수요를 총족시켰다. 1980년 해외 진출 취업 인력이 15만명에 달했고, 83년에는 최대 22만명까지 늘어났다는 통계 자료를 보면 그들 세대가 우리 경제에서 얼마나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했는지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매달리던 역사가 언제까지 그들을 부른 것은 아니었다. 98년 외환위기의 늪에 빠져 기업들이 예외없이 구조조정에 나섰을 때 50대 중반의 장년 그룹을 형성한 그들 세대는 이번에는 '퇴출' 1순위가 돼야 했다. 이어서 일터 경쟁이 심화된 2000년대 초부터는 '56세까지 일하면 도둑'이라는 뜻의 신조어 '오륙도'도 유행했다.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세대가 '오륙도'로 지목되며 쓸쓸한 퇴장을 하는 현실은 경제현장의 매정함을 다시한번 절감케 한다.
 그런 그들이 이제 서서히 노년층에 편입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노년층 편입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이제는 '고령화'가 우리사회의 새로운 극복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 강원도의 경우 65세 이상 고령화 진행 속도가 전국 평균(9.3%) 보다 훨씬 빨라 벌써 13%에 육박한다고 하니 더욱 심상치 않다. 엊그제는 한국은행 강원본부가 '고령화 시대 강원경제 발전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향후 20년 이상 고령화가 강원경제의 발목을 잡아 성장률 둔화 및 지역내 총생산 저하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진단이 내려지기도 했다. "강원도의 경우에는 산업유치를 통해 젊은층을 붙잡고, 고령층이 의욕적으로 노후를 보낼 역동적 테마형 실버벨트 조성이 더욱 절실하다"는 분석도 더해졌다. 고령 세대에 접어들고 있는 해방둥이들로서는 참으로 씁쓸한 소식일 테다.
 한눈 팔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그들이기에 노후 복지대책을 제대로 세운 사람이 많을 리 없다. 그들이 평생 '화두'로 삼았던 경제가 재도약하고, 강원도에 기업이 몰려와 일자리가 확충되지 않는 한 쓸쓸하고 고단한 노후에 대한 걱정을 지울 수 없다.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해방둥이들이 환갑을 넘겨 이제 고령화 시대 무거운 '짐'을 걱정하는 시간, 그들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젊은 우리의 고민도 크다. 그런데, 해방둥이들이 헤쳐온 역사의 노정이 "그래도 너희들 고민쯤은 호사가 아니냐"고 질책하는 것 같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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