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 놓은 '비전 2011 프로젝트'가 수도권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매우 정치적인 보고서여서 허탈감과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우리가 정치적이라 하는 것은 경기도의 주장과 이 보고서의 내용이 대동소이하다는 인상 때문이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KDI는 '수도권에 관한 정부 정책이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에 따라 결정됐다'는 경기도의 그동안의 견해에 동조함으로써 스스로 경제 문제를 정치 문제로 삼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본질 외적인 이런 왜곡 현상을 논외로 치고도 KDI는 수도권 투자 억제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에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선 "정부가 수도권 투자를 억제하는 바람에 국내 기업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공장을 아예 지방이 아닌 해외로 옮길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단지 개연성일 따름이다. 인건비, 시장성 등의 이유로써가 아니라 오직 수도권 공장 총량제, 과밀 부담금제 등 정부의 수도권 규제 정책 때문에 기업을 못하겠다고 해외로 이주한 기업이 몇이나 되는지 자세히 제시해야 한다.

수도권 정책이 KDI의 주장대로 그토록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이었다면 정책 결정 이후 지난 30 년 간 수 많은 기업이 국외로 빠져나가 국내 공단이 공동화(空洞化)됐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사회간접자본 시설의 열악함 속에 물류비 부담이 있었음에도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난 해 강원도로 이전한 기업이 150 개가 넘는 등 갈수록 지방 이전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보고서는 따라서 전적으로 외국 자본 유입에, 그것도 특히 외국 기업의 대규모 테마 파크 투자 문제를 지나치게 의식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며, 우리가 보기엔 이것이 관광 사업에 외국 자본 투자를 고대하는 경기도의 현실과 닿아 있다는 것이다. "외국 자본이 고급 교육산업이나 대규모 테마 파크 투자를 기피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KDI의 보고는 '교통망이 확충된 지금 대규모 테마 파크가 반드시 수도권이 아니라 인접 강원도 영서지방 어느 곳에 세워진들 전혀 문제될 것 없다'는 일반 인식에 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울 집중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인천 수원을 1차 거점도시로, 파주 동두천 평택 남양주 이천을 2차 거점도시로 삼자'는 견해를 담은 보고서가 일부 지역에 이익을 주는정치적인 논리일 수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백번 양보해 KDI의 주장이 국가 경제를 위한 충정(衷情)일지라도 지방 분권을 외치는 지금 대국적인 시각이 아니라 몇몇 외국 기업의 투자 기피 현상에 좌우되는 단견으로 비쳐져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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