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식 논설실장

 옛날 신라 화랑 영랑(永郞)이 차를 달여 마셨다는 한송정(寒松亭)이란 정자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고려 광종 때 장진산(張晉山)이 시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한송정 차가운 밤 달이 하얗고/ 경포의 가을날 물결이 잔잔하구나/ 슬피 울며 왔다가 다시 또 가니/ 저 갈매기는 언제쯤 믿음이 있을 것인가."
 한송정을 '녹두정(菉荳亭)'이라고도 불렀다. 부사 조하망(曹夏望)도 시를 짓는다. "녹두밭 메말라 꼬투리 입 벌리고/ 황어탄(黃魚灘) 물 잦으니 고기 뺨이 드러나네." 이 시에 나오는 황어탄은 어디에 있는가? '증수임영지'는 "황어탄은 풍호(楓湖) 남쪽 벼랑에 있다." 했다. 오늘 우리들의 관심은 바로 이 '풍호'다.
 그러면 풍호는 보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가? 아니, 다시 질문한다. 풍호는 어디에 '있었'는가? 강릉 남쪽 시동(詩洞)에 '있었'다. 둘레가 5~6 리가 되었으며, 크기가 비록 경포호만 못하나 호수 가운데에 연꽃이 만발하니, 경포호에는 없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연꽃이 잘 피고 못 피는 정도를 살펴 마을의 길흉을 예견했다.
 정경세(鄭經世)란 이가 풍호를 예찬한다. "풍호가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지 못한 것은 이웃에 있는 경포호의 절경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니, 이것은 마치 경수(涇水·맑은 물)가 위수(渭水·흐린 물) 때문에 그 명성이 빛을 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모든 호수에 정자가 있듯 아름다운 풍호에 '풍호정(楓湖亭)'이란 정자가 '있었'다. 기록은 "금폐(今廢)" 즉, "지금은 없어졌다." 한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기록된 정자가 이것만이 아니다. 구화담정 쾌재정 무진정 애일당 강정 취적정 등 주변의 정자들이 하나같이 '지금은 없어졌다'이다. 아름다운 풍광에 어울리는 경포대 정자 정도만을 겨우 감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애석하고 개탄해 마지않을 일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정자가 아니라 호수 자체가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일생을 바다에서 보내고 알을 낳기 위해 강으로 돌아오는, 우리들이 회와 매운탕으로 즐겨 먹는 황어의 그 '뺨이 드러나는' 황어탄이 '풍호 남쪽 벼랑에 있었다' 하니, 풍어는 동해의 파도가 만들어낸 석호(潟湖)임이 분명하다. 경포호 영랑호가 그러하듯 말이다.
 우리 강원도 동해안엔 18 개의 석호가 '있었'다. 약 4000년 전에 형성된 석호가 근래에 겨우 18 개 남아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당 시대에 와서 겨우 7 개만 명맥을 유지할 따름이요, 11 개의 석호가 사라졌거나 사라지는 중이다. 풍호는 지난 70년대에 그 옆에 영동화력발전소가 생긴 이후 여기에다가 발전소 폐기물을 버리면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추억 속의 호수다.
 얼마 전에 풍호가 있던 자리에 골프장을 만든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눈물나는 소식이다. 한송정에서 차를 달여 마신 뒤 풍호로 갔을 영랑 낭도가 눈물 흘리고, 풍호를 건너 강릉으로 들어온 수로부인도 흐느낄 소식이며, 풍호와 자연적 정서적 결연 관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피눈물 혹은 분노를 자아낼 뉴스다. 골프장을 만들어 강릉시가 거둬들일 돈은 얼마인가. 반성 없고 살핌 없고 성찰 없고 가치론적 사색이 없는 행정의 무심함 혹은 무식함을 깊이 의심한다.
 저 옛날 예의 정경세는 풍호를 다시 이렇게 읊는다. "유람객이 한송정으로부터 남쪽으로 울창한 송림을 지나 부드러운 모래를 밟고 가다가 들어가면 갈수록 더욱 깊어지며, 송림과 백사장을 지나 또 다시 들어가다가 서쪽을 돌아보면 문득 드넓은 망망대해가 끝없이 펼쳐진 것이 마치 하늘과 같은 빛깔로 닿아 있으며, 또 휘황하게 밝게 보여 세상 사람들을 착각 속에 빠뜨리고 놀라게 하니, 명승지가 분명하다."
 이런 '금폐'의 경우가 어디 풍호뿐일까 보냐! 슬프다, 모든 가치가 물신주의의 카니발 속에 경박한 상품으로 전락하는 이 야만의 시대에 이처럼 빈약한 방식으로 풍호를 찾아갈 따름이니.
이광식 논설실장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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