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 편집부국장 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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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목·건축을 말할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로마인이다. 2000년전 로마인들은 유럽과 소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그들의 거대한 판도내에 거미줄 같은 로마 가도를 깔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념비적 구조물을 남겼다. 그렇게 쌓은 토목·건축 기술력은 전장(戰場)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돼 단 하룻밤을 묵는다해도 우직하게 연설대와 성화대, 화장실, 취사장까지 갖춘 숙영지를 건설했다. 로마군 숙영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민족들에게는 두려운 존재였고, 그들이 라인강을 따라 건설한 라인 방어선은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경계선이었다. 오죽했으면 제정시대 로마군 명장 코르불로가 "로마군은 곡괭이로 싸워 이긴다"고 말했겠는가.
 그들이 도처에 남긴 토목·건축 유물들은 그 기술력으로 인해 예외없이 후대 사람들의 전율을 샀다. 남 프랑스 님 지역의 수도교(水道橋) '퐁 뒤 가르'는 특히 많은 찬사를 받은 대표적인 로마 건조물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스땅달은 "마치 장엄한 교항곡을 눈으로 보는 것 같다"고 했고, 장 자크 루소는 "나는 왜 로마인으로 태어나지 못했는가"라고 넋두리 같은 찬사를 바쳤다. 2000년전 님 지역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가르강을 가로질러 건설된 길이 370m, 높이 48m의 퐁 뒤 가르는 지금 세계인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건설에 관한한 우리도 어깨가 으쓱해지는 역사가 적지않다. 일제 식민 수탈기를 거쳐 온 국토가 초토화되는 6·25 전쟁까지 치른 맨주먹으로 세계 건설시장을 누볐다. 중동 개척사를 살펴보면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 일화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난 1974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 국왕은 삼환기업에 공사를 더 줄 것을 지시했다. 삼환기업 근로자들의 일하는 모습을 목도한뒤 감복했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업체중 가장 먼저 중동에 진출한 삼환기업은 그때 사우디아라비아 최대도시인 제다시를 뜯어고치는 개조공사를 하면서 횃불을 대낮처럼 밝히고 철야작업을 했다.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공기를 맞출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횃불 장관을 보게 된 국왕은 "저렇게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들을 일찍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일본인을 게으른 사람으로 보고있는 세계 유일의 국민이다"라는 1977년 뉴스위크지의 평가가 괜히 나온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 건설사는 웅변한다.
 로마인들이 곡괭이로 세계를 제패하고, 우리 선배들이 숱한 '횃불 신화'를 기반으로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초석을 다졌듯이 건설산업은 한 국가나 지역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실로 지대하다.
 산업이 아무리 다변화 됐다고 해도 전후방 산업 연관 효과가 건설산업 만한 업종을 찾기 어려운 것 또한 예나 지금이나 불변이다. 합판, 철근, 시멘트, 레미콘 등 각종 자재산업은 건설업과 부침을 함께 할 수밖에 없고, 건설시장 침체는 곧바로 실업률 증가로 이어진다. 심지어 아파트 건설시장이 침체하면 가구, 가전 업계도 직격탄을 맞게 된다.
 지방경제는 더 민감해 강원도처럼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곳은 건설경기의 명암에 따라 경제전반이 울고 웃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인천·대전·충북을 비롯해 대구 등 광역 자치단체들이 잇따라'조례'를 제정해가며 지방 건설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이는 이유를 알 만하다.
 강원도 건설업은 지금 안팎으로 어렵다. BTL(임대형민자사업)과 정부투자기관 등이 발주하는 대규모 공사 등은 중앙의 대형 건설업체들 몫이고, 아파트 건설시장에서는 지방업체를 아예 찾아보기 어렵게 된지 오래다. 소규모 공사에는 우후죽순 업체 난립에다 외지 철새업체들까지 들끓고 있다.
 그런데 어찌하랴. 강원도에는 그옛날 로마처럼 SOC 확충 투자사업이 봇물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업체들이 큰물에 나가 경쟁할 기술력을 갖추려 해도 '텃밭'인 도내에서 수해복구조차 좀체 일할 기회를 잡을 수 없으니. 강원건설단체연합회까지 결성해가며 지역 건설업 활성화 조례 제정 등의 대책을 호소하고 있는 지역건설업계의 목소리는 한마디로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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