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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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버지니아공대 참사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은 아직 제대로 된 총기 규제가 없는 나라다. 왜 그렇게 됐는가? 개인의 총기 소유를 지지하는 전미총기협회(NRA)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매년 총기 사건으로 4만 명 정도가 사망하는 미국에서 여론조사를 하면 총기 소유를 규제하자는 의견이 훨씬 많다. 의원들로선 이 같은 민의를 대변해야 하지만, 총기 규제 목소리를 높이다가는 다음 선거 때 NRA의 낙선 운동 표적이 된다. NRA는 특정 정치인을 손 볼 대상으로 찍으면 네거티브 공세를 강화하거나 상대 후보를 전폭 지원하는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떨어뜨리는 것으로 악명 높다.
 강원도도 이렇게 한번 해 보자. '악명'을 떨치자는 얘기가 아니라 '소수의 역설(the paradox of minority)'을 믿어 보자는 것이다. 선거는 다수가 이기는 게 순리인데 가끔 '응집된 소수'가 '이완된 다수'를 이기는 역리가 발생한다고 하지 않던가. 오는 12월 대선에서 강원도가 응집된 힘을 발휘하여 '소수의 역설'을 이뤄 보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
 가령 이런 것. 가난에 찌든 쿠바 사람들에겐 미국의 플로리다주(州)가 그야말로 전설의 황금 도시 엘 도라도다. 그래서 14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플로리다까지 건너가 어느새 거기엔 쿠바 사람을 주축으로 한 히스패닉계가 16%에 이른다. 이들은 민주당을 멀리하고 쿠바 독재 체제를 혐오하는 공화당을 지지한다. 그리하여 지난 2004년 미국 대선에서 플로리다는 백악관 주인을 결정하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s)'가 됐다. 플로리다가 '선거 판세를 흔드는 주(州)'였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플로리다의 표심에 미국 대선 선거판이 휘둘렸다는 얘기다.
 강원도가 이번 대선에서 '악명'을 높이지는 말고 플로리다주처럼 선거판을 휘젓는 일이 발생하도록 응집된 소수의 역할을 할 수 없는가, 하는 소박한 혹은 엄청난 상상을 한번 해 본다.
 그렇게 되지 말란 법 없다. 인간이란 본디 생존을 위해 최적의 선택을 추구하는 '진화 심리'를 지니고 있다. 사람들이 친구를 사귀려 하고, 동맹을 맺으려 하는 까닭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요, 그리하여 본능적으로 적대 세력을 배제하려 한다. 예컨대 선거에서 6·25 세대는 진보 성향을, 386 세대는 반(反)민주 세력을, 20~30대는 완고한 이미지의 후보자를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식이다.
 역대 정부에서 내내 소외되고 홀대받고 무시당했던 강원도가 매우 당연한 '진화 심리'의 작동으로 어느 한 쪽을 완전히 배제하여 소외 홀대 무시당하는 위험을 피해 보자는 것이다.
 단 한 표 차로 당락이 갈린 경우도 있으니 이게 가능하다. 1839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에서 당시 현역 주지사였던 에드워드 에버렛은 투표하지 못했다. 그런 그는 단 한 표 차로 낙선한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 때 경기도 광주 문학진 후보는 단 3 표로 박혁규 후보에게 졌다. 이승만은 영구 집권하려는데 표가 부족해 말도 안 되는 사사오입(四捨五入)까지 만들어냈다. 단 몇 표가 중요하다. 이 예들은 강원도의 응집된 몇 표가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오는 12월 19일에 치러지는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강원도의 응집된 표심이 결과를 판가름 내는 쾌거를 이루어 보자. 여기서 잠깐. 그동안 강원도의 표는 지리멸렬했음을 상기하라. 지난 1992년 12월 18일의 제14대 대선에서 정주영 후보의 전국 득표율이 16%일 때 강원도는 그에게 33%나 줬다. 1997년 15대 때는 전국 19%일 때 강원도는 이인제 후보에게 30%를 안겨 줬다. 이러했으니 14대 김영삼, 15대 김대중 대통령이 강원도에 특히 애정을 가질 까닭이 있었겠나.
 이런 이유로도 오는 제17대 대선 때는 강원도가 선거판을 휘두르는 '스윙 스테이트'가 돼 본때를 한번 보여 줬으면 좋겠다, 하는 상상 혹은 주장을 해 보는 데, 뭐랄 사람 없겠지.
이광식 논설실장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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