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재단마다 수혜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장학기금 이자 수입이 줄어들면서 발생하고 있는 저금리시대의 불가피한 부작용이다. 사실 장학증서는 공부 잘 하는 학생이 받는 '수재(秀才)증표'라기보다, 어려운 가정에게 혜택을 주는 학업지원금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학비를 원조하여 수학을 돕거나, 연구비나 상금을 주어 학술연구자의 연구를 장려하는 장학제도야말로 잘 사는 나라일 수록 더 장려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이나 기업, 그리고 공공단체나 일반단체, 그리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출현하고 있는 육영제도의 건실도는 그 사회의 건강지수이자 미래지향지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장학금을 받는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장학금을 관리하는 장학재단의 임원 되기를 서로 꺼리는 이 기이한 풍조는 지금 이 사회의 위기 경고일 수밖에 없다. 사회안전망 어느 구석인가 펑크가 나고 있는 것이다.

장학재단들이 갑자기 '가난'해 진 것은 오로지 그 '수입원'을 은행금리에 의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 수준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한번 만든 장학재단이 그후 기금이 불어나 사정이 좋아졌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누가 출현했던 일단 결성되고 나면 그것으로 기금은 사실상 동결되는 것이 우리 장학재단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결국 학자금 등 학업비용은 상승하고 있는 데도, 수학지원비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어 어떤 경우는 '장학금 노릇'을 제대로 못해 온 것도 사실이다. 여기다 금리인하 '악재'까지 겹쳐 지원액을 줄이든지, 수혜자를 줄여야 할 판이 돼 주는 사람은 별 보람이 없고, 받는 사람도 별 도움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방법은 건전한 기부문화, 특히 육영기부문화에 세상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IT산업혁명과 증권열풍으로 떼돈을 번 이들이 자선가 집단으로 변신해 육영에 투자하는 이른바 '벤처 자선'붐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다만, 개인이나 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지자체 재정 후원이나 정치후원에 쾌척하는 경우는 수없이 보면서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소리는 별로 못 들었다. 사실 장학금에 대한 요즘사회의 인식은 '평생 안 쓰고 모은 돈을 내놓은 어느 노인의 갸륵한 이야기'일 뿐 '가진 자는 그런데 돈 내놓는 것 아니라'는 풍조에 덧칠돼 있는지 모른다. 바로 지금 그런 재정후원, 정치후원보다는 장학후원을 하는 이가 더 인기가 있다는 이 사회 인식구조 혁신이 새삼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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