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그의 작품을 통해 기자들을 냉소하고 조롱한 것으로 유명하다. 해리포터-마법사의 돌에서 그가 그려낸 기자는 혐오 그 자체다. 외모부터가 그렇다. 작품에 등장하는 리타 스키터라는 여기자는 신기하게 구불거리는 머리, 삐죽 나온 턱, 보석박힌 안경에 악어가죽 핸드백, 5㎝나 되는 진홍색 손톱의 소유자다. 왜곡보도가 장기인 그는 남의 말을 옮기고 딱정벌레로 변신, 남의 이야기를 엿듣다 결국 영원히 열리지 않는 유리병에 갇혀 최후를 맞는다.
 요즘 노무현 대통령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취재 선진화 방안을 보면서 해리포터의 그 내용이 떠올랐다. 인터넷을 열어보면 거의 대부분의 반응은 리타 스키터 기자의 잔상들 뿐이다.‘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기사를 담합하는 기자들로 시작된 취재 지원 선진화 논란은 기자실 뿐만이 아니라 기자사회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춘천에 있는 '노뼈(노 대통령을 뼈에 새겨 놓을 정도로 지지한다는 모임)' 친구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최근 브리핑룸 통폐합에 대해 친노그룹의 인터넷 공간에 떠 다니는 글을 정리해서 보내준 것이다. 내용이 새로울 것은 없었다. 언론의 집단반발이 그 알량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 대부분이었다.
 그 글을 보면서 갑갑함을 느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가 언론을 보는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에 대해 언론현장에서 느끼는 소감은 자괴감같은 것이다. 언론 스스로 취재관행을 개혁하지 못하고 결국은 권력에 의해 더 나아가 시민사회에 떠밀려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계기를 활용, 마치 성전(聖戰)을 치르듯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언론권력이 개혁대상으로 보다 명확하게 떠오를 때 성전의 전선은 확대되고 재생산된다. 그래서 최근의 논란이 취재 선진화보다 개혁대상을 부각시키는 쪽에 맞춰져 있는 것 아닌가. 이 과정에서 언론은 점차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조치의 배경은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 유지와 취재기회의 균등한 보장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주제는 이해하기 매우 어렵고 정파적 이해까지 포함될 경우 보다 복잡해 진다.
 참여정부가 건강하게 대언론관계를 유지해 왔는가 혹은 이 선진화 방안이 전 언론에 균등한 취재기회를 보장할 것인가는 화자(話者)마다 다른 것 같다. 취재 선진화라는 추상적이고 소프트웨어적 의제를 송고실 통폐합이라는 하드웨어적 접근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과연 원칙에 얼마나 부합될 지도 의문이다.
 기자실 통폐합과 취재 접근제한 조치같은 것은 향후 언론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형태로든 지방언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미 중앙부처 기자실 논란이 지방언론을 포함한 기자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언론 취재환경에 대한 진지한 성찰없이 기성 언론을 기득권 집단으로 내모는 것은 선뜻 찬성하기 어렵다. '노뼈' 친구가 보내준 한 지방 언론인의 글에는 자신의 취재일선 경험담이 포함돼 있었다. 자신은 그 관행을 거부, '독야청청'했다는 것이지만 그 관행을 수용한 동료 기자들은 모두 반론 기회도 없이 구악으로 남게 됐다.
 취재 선진화 논란이 비난과 독설에 묻히지 않고 말 그대로 취재 선진화를 위한 논란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언론 스스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것은 독야청청류의 독백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서로 등에 칼을 꽂기 위해 펜을 든다면 그 자체가 구태 아닌가. 비록 정부에 의해 주어진 공간이지만 이제라도 언론인들이 스스로 언론환경을 점검하고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그것이 이 논란을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받도록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송정록 서울본부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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