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릉대와 원주대 통합 갈등은 어처구니 없는 고속도로에서의 2차 사고가 주는 전율을 떠올리게 한다. 강릉대와 원주대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지난 3월 통합대학을 출범시켰다. 도민들의 기대 속에 한 학기의 학사일정을 마쳤다. 이제 좀더 속도를 내면서 통합의 정신을 실현하고, 그 효과를 실증해 보여야 할 차례다. 그러나 지난 한 학기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하기보다는 퇴행적인 행보로 실망감만 키워 놓고 말았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다자간 통합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기본 목표다. 대학 통폐합은 저마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제 살을 깎는 아픔을 감내하겠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구조조정의 과정을 먼저 거친 민간기업이나 금융권의 전례는 이 일이 얼마나 통렬하고 눈물나는 일인가를 말해준다. 피할 수만 있다면 그 혹독한 상황을 자청할 이유가 없다. 개혁이 뜻하는 바 구조조정은 살점을 떼어내고 피를 흘리는 처절함이 뒤따른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겠다는 것이다.
적당히 미봉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구조조정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낭만적인 대학 통폐합은 없다. 강릉대 원주대 양측은 마치 안 해도 될 일을 자의적 선택에 의해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듯하다. 피할 수 있는 일이라면 왜 고행의 길로 뛰어들었는가. 통합대학은 지난 한 학기 동안 교명(校名)을 확정짓지 못한 채 논란을 증폭시켜왔다. 이젠 양 대학의 문제를 넘어 강릉 원주의 지역갈등으로 비화될 우려마저 낳고 있다. 이것은 대학통합이 기대했던 바가 아니다.
양 대학은 지난 해 공모를 통해 통합대학 교명을 1순위 강원제일대, 2순위 강일대, 3순위 명원대로 선정했다. 그러나 거점대학 소재지인 강릉의 거센 반발에 교명을 확정하지 못한 채 통합대학을 출범시켰고 한달 여 뒤 교육인적자원부에 교명 승인신청을 했다. 수순착오의 우를 범한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 또한 적법 절차를 통해 제출된 교명 승인신청에 대해 여론을 재수렴토록 하는 어정쩡한 결정을 내렸다. 교명갈등은 부실합의를 한 양 대학이나 단호하지 못한 당국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원주지역의 뒤 이은 반발은 예정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최근 원주캠퍼스에서 통합대학 현판이 철거되고, 교육부를 상대로 대학 교명변경 불승인 취소 청구소송이 제기됐다. 갈 데까지 간 셈이다.
사태가 악화되면서 양 대학의 통합이 애당초 잘못된 조합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원주~강릉은 이미 자동차로 한시간 거리이고 철도까지 연결되어 내륙과 해양의 독특한 장점을 살린다면 얼마든지 좋은 만남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통합은 존립을 위해 어느 쪽도 회피할 수 없는 길임을 환기해야 한다. 더 이상 명분에 집착하다 내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중부권 거점으로 부상하는 원주와 동해안의 중심을 자처해 온 강릉이 상생과 호혜의 정신으로 생산적 관계를 정립해 가는 데 양 대학의 통합은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교명 갈등이 지역에 대한 무한 애정이 담겨 있다는 점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내 손에 쥔 것을 버리지 않고는 상대와 진정한 악수를 나눌 수 없다. 이렇게 머뭇거리다 돌이킬 수 없는 2차 피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대학 통폐합의 격랑 속에서 경직된 자세를 고집하는 것은 화근이 될 수 있다. 씨름판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위험이 몰려오는 것도 모른 채 샅바싸움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지금의 교명갈등이 전혀 의미 없는 일이 될 가능성도 상정해 봐야 한다. 양 대학의 통합이 최종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하는가. 지금 현실은 교명을 결사적으로 지키겠다는 순진한 애향심이나 이미 약속한 것이므로 지켜야 한다는 형식논리에 대학의 미래를 의탁해도 좋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김상수 논설위원 ssookim@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