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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페스토는 1834년 당시 영국의 집권당이 선거를 앞두고 공약을 발표한 것에 기원한다. 매니페스토의 뜻은 선언 성명 공언이지만 국민에게 밝혀 공개적으로 약속한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노동당은 충실하고 알찬 매니페스토로 보수당의 대처총리에 빼앗겼던 정권을 되찾아 블레어는 10년 총리재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정책학회 주관으로 각 정당의 정책위원회 의장과 각계 인사들을 초청, 정책선거를 추진하기 위한 모임을 가졌다. 학회는 정책선거를 위해 각당의 선거공약에 대해 전문가들을 동원, 정책의 타당성 정당성 여부를 분석·평가해 국민에게 발표하겠다고 성명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모든 정당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정책위 의장들은 “어느 당을 망하게 하려고 이런 일을 하려는가. 강행할 경우 법적 대응(고발)도 불사하겠다”며 펄펄 뛰었다. 은근히 화가난 필자는 의장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공약이란 정당의 이름으로 책임을 지고 내는 것일 터, 공약의 평가도 그 내용을 발표도 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얘기인가. 결국 표를 얻기 위해 허황된 공약, 엉터리 공약을 마구 쏟아내겠다는 것 아닌가”고 따졌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공약·정책을 그저 선전용 득표용으로 제시하던 때의 모습이다.

미국에서 대선에 뜻을 둔 인사는 대체로 선거가 있기 2∼1년반 전에 출마를 선언한다. 말로만 선언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국가경영과 발전에 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출마선언 후에는 언론을 비롯해 시민단체 각종 전문기관·단체 등으로부터 가혹할 정도로 엄정한 검증을 받게 된다. 검증은 2가지. 하나는 경력·경륜·능력·사생활·도덕에 관한 인물 검증이고 또 하나는 정책검증이다. 인물검증도 힘들지만 타당성·합리성·국익성·재원 마련 등에 대해 이잡듯 조목조목 추궁하는 정책검증의 덫에 걸려 숱한 출마선언자들이 소리없이 도중하차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랫동안 선거때면 주역이어야 할 정책·공약을 외면해왔다. 말로는 “정책으로 승부를 가리겠다”고 호언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금품공세 상대방후보에 대한 비방과 인신공격, 흑색선전 등으로 선거판을 혼탁하게 만들었다. 주요정당들은 진작부터 소위 100대 공약, 200대 공약을 가보처럼 보관하고 있다. 시대와 모든 분야의 상황이 발전되고 변화하면, 또 국민의 생각과 요구가 달라지면 정책·공약도 구상·장성·수립부터 실현성에 대한 가치에 이르기까지 과감하게 탈바꿈해야하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작년 5·31 제4기 지방선거 때 영국·일본식의 매니페스토방식이 처음으로 소개된 후 중앙선관위는 17대 대통령선거를 내실있는 정책선거로 유도하기 위해 정당과 후보자가 공약을 제시할 때 목표·우선순위·타당성·소요예산조달·기한 등을 합리적인 논리와 수치로 밝혀 줄 것을 끈기있게 권유해 오고 있다.

특히 지난주에는 각 당의 대선후보들을 초청해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실천 협약식’을 가졌다. 후보들은 깨끗한 선거와 정치 선진화를 위해 정책선거를 약속했지만 그 날도 각 당은 상호 흠집내기 비방 공격성 발언으로 하루를 보내다 시피했다.

매니페스토-정책 경쟁은 과연 언제쯤 꽃 피울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국민이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차려 오는 선거에서 판에 박은 엉터리 공약, 지키지도 않을 약속들을 가려야 한다.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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