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인 수 환동해정책연구소 이사장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남침으로 일어난 3년간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휴전 상태일 뿐이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클라크(Mark Wayne Clark)와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金日成),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최종적으로 서명함으로써 협정이 체결된 이래 무려 54년간이나 휴전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후 남북은 대치 국면에서 긴장을 멈추지 않았고 자칫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를 수없이 겪어야 했다. 비록 국지전 내지 전면전 양상의 전쟁은 없었을지라도 소규모의 충돌은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는 화약고와 다를 바 없어 언제든지 뇌관만 건드리면 폭발할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 견해였다.

1994년만 하더라도 판문점 회담에서 북측 인사들은 공공연하게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호언했다. 그러던 것이 2006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이 열려 비로소 남북 화해무드 조성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 역시 평화공존의 틀 안에서 남북 교류를 본격화하면서 급기야 지난 10월 4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10개항에 걸쳐 괄목할 합의를 끌어냈다. 곧‘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다.

6·25 전쟁으로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국토를 폐허로 만들었다. 기록에 따르면 전투 병력의 손실만 해도 유엔군과 한국군을 포함하여 18만, 북한군 52만, 중공군 90만 명의 인적 피해를 가져왔다. 또 전쟁 기간 중 남쪽에만 99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필자 역시 6·25를 경험한 세대이다. 피난민 대열에서 용케 살아남아 가난한 시절을 어렵사리 넘겼다. 이제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부흥을 일으켜 국민 개개인이 부지런만 하다면 먹고 사는 자체 즉 빵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북과의 대치 국면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공포였다. 어쩌면 한반도에 피비린내 나는 아비규환의 동족상잔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강박(强迫)이다. 한반도에 다시 전쟁은 없어야 한다. 이는 6·25 전쟁을 겪은 우리 세대의 책무이기도 하다.

1996년 9월 18일 강릉 정동진에 북한 잠수함이 침투하였던 사건을 상기해보자. 불과 27명의 침투 북한군을 섬멸하기 위해 1군 사령부 예하부대와 예비군 및 경찰 등 11만 명이 작전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2군의 예비 병력까지 지원되고 전투기 및 함정 등 각종 장비가 뒤따라 막대한 전력을 동원하였다는데 이를 금전적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금액이 될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작전 중 입은 아군의 인명피해는 무엇으로 환산할 것인가.

이로 인해 관광지 동해안 상 경기는 순식간에 실종되어 지역 경제는 일시에 마비되었다. 이런 식으로 서해와 남해 또는 내륙으로 북측에서 불과 수명의 공작원을 침투시킨다고 가정할 때 그 손실은 엄청난 것이다. 이를 보더라도 전쟁 없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북측에 경제적 지원은 그리 나무랄 수만은 없다고 본다.

이번의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에 합의한“현 정전 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은 또 하나의 역사적인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종식’ 실현은 7천만 겨레의 한결 같은 염원이 아니었던가.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은 자신의 잔여 임기 대미(大尾)를 장식하는데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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