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해 창
제자감리교회 목사
춘천연탄은행 대표
오늘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일 가운데 하나는 정치나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신과 문화의 죽음이다. 대중들은 온통 부동산, 주식, 펀드, 투자 등 지엽적인 문제에만 정신이 팔려있고, 연예 스포츠 레저 게임 여행 등 오락거리에만 몰두하고 있다. 높은 정신과 문화가 퇴보하면서 날카로운 역사의식도, 깊은 삶의 성찰도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세기에 더 이상 셰익스피어, 존 스타인벡, T. S 엘리엇, 정약용, 유영모 같은 위대한 문학가 시인 사상가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가장 큰 원인은 도무지 책을 읽지 않는 데 있다. 문화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미국의 경우 성인 가운데 60% 정도가 전혀 책을 읽지 않고 6%만이 1년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하는데 이 경우도 로맨스 소설이나 처세술 같은 책을 포함한 것이다. 한국 상황도 그보다 낫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지성을 대표하는 이어령 선생은 자신의 정신과 문학의 뿌리를 어머니가 읽어주신 책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글자를 알기 전에 먼저 책을 알았다. 어머니는 내가 잠들기 전에 늘 머리맡에서 책을 읽고 계셨고, 어느 책들은 소리 내어 읽어주시기도 했다. 겨울에는 지붕 위를 지나가는 밤바람 소리를 들으며, 여름에는 장맛비 소리를 들으면서 어머니가 읽어주시는 책을 통해 상상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책 읽어주고, 이야기를 해주는 어머니는 참으로 귀하다.

조선시대 인물들인 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 다산 정약용은 위대한 인물이면서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아버지들이다. 이들은 자녀교육에 친히 모범을 보였는데 그 모범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책 읽는 방법, 독서교육을 해주었다. 서애 유성룡(1542∼1607)은 <징비록(懲毖錄)>에서 두 아들에게 편지를 써서 과거 공부보다 독서를 권면했다. “너희들도 부질없는 과거공부를 잠시 접어두고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가져다가 정밀하게 사색하고 익숙하게 읽어서 자기의 것이 되도록 하라. 그러면 안목은 저절로 높아지고, 마음도 저절로 넓어질 것이니 기타 보잘 것 없는 것들이야 힘들이지 않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미국 교육 과학 연구소가 “2002년 미국 지도자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보고서에서 지도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연구했다. 그 결과 그들은 초등학교 시절에 좋은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반대로 범죄자들은 초등학교 시절에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는 통계를 내고 결론적으로 이런 보고를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읽은 책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

유대 역사에 의하면 AD 70년 로마군대가 예루살렘을 침략했을 때 모든 것이 다 파괴되었지만 랍비들은 생명을 걸고 토라를 공부하는 도서관만은 지켜냈다. 후에 역사학자들은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다 민족의 신앙과 정신의 뿌리인 도서관이 보존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요즘 우리 가족은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것은 TV를 보지 않는 전쟁이다. 이것은 컴퓨터와 TV에만 빠져있는 산만한 아들에게 독서습관을 키워주고, 생각하는 힘을 심어주기 위함이지만 나 스스로 성서와 더 가까워지고,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깊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 더러워진 영혼을 정화하고 자신을 새롭게 하기 위함이다. 깊어지지 않으면 절대로 큰 물고기를 얻을 수 없고,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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