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재 명 강원대 경영관광회계학부 교수

▲ 김 재 명 강원대 경영관광회계학부 교수
올 가을 끝자락엔 단풍이 들고 낙엽 떨어지는 소리도 느낄 여유가 없이 세상이 바쁘고 시끄럽다. 눈을 감고 귀를 닫을 수 없는 보통사람인지라 세상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가 보다. 원칙이 없는 요즘 정치판을 지켜보면서, 정년을 전후한 인생 선배들의 삶을 보면서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과 ‘추양’ 한경직 목사가 생각났다.

철이 들면서 인생은 그 누가 아닌 자신이 행하는 ‘선택’의 연속으로 꾸며진다. 이런 선택으로 때론 가슴이 내려앉는 순간도 경험하기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정’하고 ‘행동’했기에 부와 명예를, 때로는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것들이 영원한 것이 아니기에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 갈 길을 다한 뒤의 모습’이 새삼 소중하게 여겨진다.

정 전 회장은 1983년 40대 늦은 나이에 ‘신뢰와 자율’이라는 경영철학으로 ‘미래산업’을 창업하여 세계적 반도체장비 업체로 키워낸 벤처 1세대이다. 그는 2000년 우리나라 최초로 미래산업을 미국 ‘나스닥(NASDAQ)’에 상장하기도 한 잘 나가던 때에 “떠나야 할 때 떠날 줄 아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며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경영권 세습을 관행처럼 여기는 이 세상에서 “경영권을 자식에게 세습시키지 않겠다”는 자신의 평소 소신대로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준 것이다.

정 전회장은 ‘장차’ 필요로 할 만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투자하는 마지막 벤처 프로젝트로 생명과학과 정보기술 및 기계기술을 융합하여 학제간 연구를 선택했고, 이를 목적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300억원을 기부했다. 더욱이 ‘정문술 빌딩’ 준공식에 초청을 받은 그는 “마땅히 돌려줄 것을 돌려준 곳에 가서 축사하고 꽃다발까지 받을 면목이 내겐 없다”라며 불참했다.

한편 ‘추양’ 한경직 목사는 평생을 섬기는 자와 낮은 자의 모습으로 한국장로교 성장을 이끄는 삶을 살았다. 그는 1946년 12월 2일 오늘날 영락교회의 전신인 베다니교회를 세웠고, 한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폐허가 된 민족과 교회의 재건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한편으로는 교육사업과 사회사업 등을 활발히 펼치면서 교회의 역할을 부단히 고민하고 실천하는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여러해 전 여름 휴가철이 끝난 한참 뒤에 설악산 아래쪽에 자리한 추양 한경직 기념관을 찾은 적이 있다. 추양하우스 입구에서 만난 어눌한 글씨로 쓰여 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는 물음은 그동안 내가 스쳐 읽고 들었던 말씀과는 사뭇 달랐다. 이제껏 경험한 문장과 글씨들 가운데 가장 생명력 있게 내 자신에게 던지는 화두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금도 그 때 그 느낌을 잊을 수 없고, 힘들 때 생각하는 물음이 되었다.

그는 은퇴한 이후에도 교회연합사업과 민족복음화에 매진하였고,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의 상금 100만 달러도 북한 선교를 위해 내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홀연히 남한산성 외진 곳을 찾아 자신의 소명을 마무리하기까지 머물렀다. 이것이 “우리가 다 보통사람으로 평범한 물방울이지만 햇빛이 비치면 무지개가 되듯이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추양’의 삶이었다.

이들 두 분들의 삶을 통해 ‘아름다운 경영’과 ‘아름다운 퇴장’이 어떤 것인지를 새삼 생각한다. 이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모든 추한 모습들이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면서 지금도 수없이 반복되는 시행착오를 마음에 담고 몸으로 드러내면서 살아가는 삶이기에 앞으로 허락된 삶을 기대하며 마음을 추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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