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금강산관광이 시작되면서 남북 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백두산 직접 관광은 민족적 비원이다. 지난 10월 2∼4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직항로를 이용한 백두산관광이 합의된 것은 따라서 관광루트의 개척을 뛰어넘는 함의가 있는 것이다. 백두산관광은 이미 2005년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바 있으나 여러 이유 때문에 미뤄져 오다 이번에 다시 가시권에 진입하게 됐다.
그러나 서울∼백두산(삼지연) 간 직항로의 역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가뜩이나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내용이 서해안 중심으로 이뤄진 데다 백두산관광마저 서울을 기점으로 이뤄질 경우 금강산관광을 통해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의 물꼬를 튼 동해안과 설악권의 거점기능이 크게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기존의 육로 금강산관광은 물론 속초∼러시아 자루비노∼중국 훈춘을 잇는 북방항로에도 적지 않은 파급이 예상된다.
정부나 현대아산이 서울∼백두산 직항로 루트를 선택한 것은 그 나름의 배경과 논리가 있다. 수도권의 상징성과 경제성이 핵심이다. 무엇보다 서울∼백두산 직항로에 대한 문제제기나 강력한 대안루트에 대한 제안이 없는 상황에서 굳이 이른바 중앙의 눈으로 볼 때 차선책으로 여겨지는 제2, 제3의 루트를 상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에 이어 최근 현대아산의 후속협의가 나온 이후에도 이 같은 기류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속초 고성 양양을 포괄하는 설악권은 시대적 기운과 주변정세의 변화와 맞물려 그 잠재적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설악권은 육로(고성)를 통해 북으로 가고, 해로를 통해 북방(중국, 러시아)으로 뻗어 나가는 전초기지에 해당한다. 이제 곧 일본(니가타)까지 연결하는 항로가 확장된다. 여기에 양양국제공항은 동해안 유일이자 최북단의 항공거점이다. 양양공항은 이 같은 전략적 구상과 판단아래 강릉, 속초공항의 기능을 흡수해 탄생했다. 이렇게 되면 설악권은 자연스럽게 환동해 연안국가 간, 혹은 육·해·공 교통수단 간 환상(環狀)교통망의 터미널로서의 역할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개항 6년째를 맞은 양양공항은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올들어 1월∼8월 하루평균 승객 수가 117명으로 상주직원(82명)과 맞먹는 수준이고 지난 한해 적자액은 129억원에 달했다. 설악권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국가차원의 북방, 동해, 환동해, 동북아전략의 포석이나 국토 균형발전이나 통일시대의 거점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도 양양공항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양양국제공항이 활력을 찾도록 하는 것은 일개 공항의 성쇠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국가전략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백두산관광 직항로의 결정은 또 한번 양양공항의 운명과 설악권의 거점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변수가 될 것이다. 강원도가 양양∼백두산노선의 카드를 내놓고 정부와 현대아산이 전향적인 검토와 전략적인 판단을 한다면 온갖 논란과 우려를 잠재우는 윈-윈의 선택이 되기에 충분하다. 단일노선 지정에 부담이 된다면 복수노선으로라도 양양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어물어물하는 사이 백두산관광의 디 데이는 다가오고 이 겨울 양양공항은 더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생떼라도 써야 할 이 궁핍한 처지에 그 어디서도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 기분 나쁜 적막감이 더욱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김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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