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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겨울

이응철 . 2007년 11월 19일 월요일
나이가 들어간다.

행운유수(行雲流水)라고 눈에 보일 정도로 모든 것이 흘러간다.

구름도 흘러가고, 물도 흘러가고. 세월도 흘러간다. 예보에도 없이 갑자기 싸늘해지더니 오늘 아침엔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점점커지는 빗줄기는 내일 아침이면 잔인한 겨울비로 낙인이 찍히리라.

샤워를 하다가 옷이 젖어 말리다가 문득 유년기 때 겨울나기가 봇물처럼 솟구쳤다. 옷을 입을 때면 어김없이 화롯불에 쬐어 입혀주시던 어머님 생각과 을씨년스럽게 서성이던 초가집 안방이 불현듯 홍수를 이루었다.

지금이야 지구 온난화로 겨울 삼동이 예전처럼 크게 수은주를 끌어 내리지 못하지만 유년기 때 겨울은 참으로 혹독했다. 추웠다. 추운 정도가 아니다. 얼핏 떠오르던 것이 우선 방에 떠놓은 물이 꽁꽁 언다. 방걸레가 얼고, 참새가 얼어 뒹굴었다. 이른 아침 등교할 때면 양볼이 얼어 서걱거리고, 소 입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리기도 했다.

반세기가 흘러가니 성숙된 문명으로 겨울나기가 예전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춥다는 것을 실감할 때면 늘 유년기를 돌아본다. 옛날 겨울은 인간도 꼼짝없이 겨울잠으로 칩거했다. 농촌에선 솔검불과 장작으로 주거공간을 구슬렸다. 방구들을 덥히고 공간은 주로 화로에 의존했다. 새벽이면 한껏 추웠다. 구들이 식어가고 이글거리던 장작불은 재로 삭아진다. 자식 춥지 말라고 새벽잠 뿌리치고 일찍 소 여물 끓이시던 어머님의 겨울이셨다.

지금과는 의류문화가 달라 내복이 변변치 않았다. 절대빈곤시절이라 모두가 추위에 떨어야 했다. 목화솜이라야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니 침구마저 변변치 못했다. 토끼 잡은 털을 벽에 부쳤다가 귀마개로 쓰고, 솜버선, 솜바지를 입고도 햇살 잘 드는 양지에서 해바라기가 되기도 했다.

또 우리네 가옥구조는 문이 유난히 많았다. 그러니 사방으로 찬바람이 들어와 옥죄였다. 언젠가 우리 주거 보온이 서양에 비해 너무 허술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본 적이 있다. 아무리 문풍지를 해달고 한시적으로 문들을 폐쇄하지만, 외국에 비하면 너무 쉽게 온도를 빼앗긴다고 한다.

지금처럼 겹 유리창도 아니요, 추석 무렵 과꽃잎 얹어 바른 문창호지 한장이 전부이니 문풍지가 밤새도록 북서풍을 막아내느라 우는 것은 당연했으리라. 가마니나 멍석으로 우사를 막고 양말도 몇개씩 껴 신었다. 누나들이 겨울이면 장갑과 양말을 떠 주면 그게 설빔이었다. 털실을 사오면 감기 편리하도록 양손을 벌려 협조했다.

겨울이 본격적이다. 그러나 예전보다 더욱 추운 것은 무슨 연유인가? 대중매체에서 연일 터지는 각박한 인간 소외현상들이고 보면, 비록 따뜻한 전기장판 하나 없이 살다가신 어머님 겨울이 진정 따듯한 계절이 아닐까?

이응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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