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인 철
도 경우회장
우리가 살아가면서 선물 한번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음의 정 표시로 서로에게 큰 부담 없이 주고 받는 것을 선물이라 하며 입학, 졸업, 결혼, 생일, 개업, 창설기념일 등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정을 나누는 것이지만 문화적 삶을 누리면서 외국문화도 끼어들어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를 비롯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더욱 요란스러워졌다.

우리들이 소년, 소녀 시절이었을 때만 해도 생일, 입학, 졸업 선물하면 연필. 공책 학용품이나 장난감, 책가방이 고작이었고 연인들 사이에서 선물 주고 받는 것도 책갈피에 고이 접었던 노랑 은행잎 하나 건네거나 강가에서 주운 마모(磨耗)가 좋은 조약돌, 바닷가 소라껍질 하나라도 전해주면 좋아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진솔한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생일 하나만 해도 얼마나 거창한지 미리 선물은 뭐, 줄거냐? 하면서 고급인형, 값진 장난감 등 따뜻한 인정보다는 서로의 허영심이나 욕망을 충족시키는 선물의 가치에 우선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가 쓴 ‘크리스마스 선물’은 가난하지만 착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크리스마스를 시간적 배경으로 묘사한 매우 감동적인 작품이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날 현직에 있었을 때 어떤 지휘관들은 부하직원들과 그 가족들의 생일을 주무부서에서 파악하도록 했다가 그날이 오면 제과점에서 자동적으로 생일축하 케이크를 배달하도록 했던 기억이 새삼 되살아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수롭지 않은 작은 배려가 얼마나 소중하였는지 아직도 잔잔한 감동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 이유는 나 아닌 남이 특별한 날을 기억해서 배려해 준다는 데서 그 선물이 손수건 한장이었거나 볼펜 한자루, 김 한톨이라 할지라도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일 것이다. 지금은 까마득한 옛날이 되었지만 경기 오산 미 314사단에서 한국 공군으로 잠시 근무하면서 콘세트 내무실만 다르고 사무실·교회·목욕탕·식당·화장실을 함께 쓰며 느낀 것은 미군 병사들이 진급해서 기뻐하는 모습은 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장교들보다 사병들이 진급했을 때 사무실을 순회하면서 담배·껌을 가지고 싱글벙글 인사를 하며 유난을 떨고 다니는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들은 갈매기 계급장 하나 진급하고 시가 한개비·껌 한개로 주는 기쁨과 받는 기쁨을 만끽하여 함께 기쁨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감명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어떤 뜻있는 독지가가 사업에 성공도 하고, 선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물어져 가는 인생의 길목에서 성격이 같은 비슷한 단체 동료, 후배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전달해 달라고 선물을 탁송했는데 공교롭게도 크기가 달랐다고 하여 작은 크기의 선물을 받은 단체가 그 배려에도 불구하고 선물을 반송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반송하는 측의 무례가 도사리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순수한 마음, 배려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보냈다가 돌려 받은 쪽의 모멸감에 대해서는 서운함이 오죽했으랴! 입이 열 개라도 무어라 할말이 없을 따름이다.

선물이란 기쁜 일에만 주는 것은 아니며 화해의 뜻으로도, 아니면 약속의 상징으로도 주고 받는 마음의 표현이다. 우리는 얼굴도, 생각도, 가치관도 다르지만 좀더 넓은 시야에서 변화의 패러다임을 바라보며 천지개벽하듯 시시각각 변화의 페달을 밟고 있는 새로운 물결에 편승하여 육체를 지탱해 주는 건강, 이를 이끌어 가는 영혼 모두 가는 세월 앞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음을 승복하고 내세(來世)에 대해 엄숙하고 겸허하게 귀 기울이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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