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희 정  한림성심대 사회복지과 교수
흔히들 우스개 말로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 중요시되었던 학벌이나 외모, 남녀 간의 차이가 없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병들기 쉽고, 신체적으로나 사회적, 심리적으로 쇠락해가는 노년기의 모습은 젊은 시절과는 상관없이 모두 비슷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과연 나이가 들면 남녀간의 차이는 없어지는 것일까? 노년학의 연구들에 의하면 노년기에도 여러 면에서 성차는 유지되거나 오히려 더 강화된다고 한다.

2005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가 75세, 여성은 82세로 여성은 남성보다 7살이나 더 오래 산다. 그러나 여성노인들은 남성노인들보다 만성병에 더 시달리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장애를 경험할 확률이 더 크다. 그 밖에도 여성노인은 배우자와 사별하여 여생을 혼자서 살아갈 가능성이 남성노인보다 더 크며, 이러한 차이는 고령으로 갈수록 더욱 커진다. 게다가 대다수의 여성노인들은 경제적으로 빈곤에 시달리면서 살아간다. 이처럼 여성노인이 보다 힘들게 살아가게 되는 것은 전 생애를 걸쳐서 여성으로서 사회적으로 불리하게 살아온 삶의 경험들이 계속 누적되어 노년기에 더 극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러한 여성노인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할머니들의 부지런하고, 푸근하고, 지혜로운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들은 없는 살림도 알뜰살뜰 꾸려가고, 자녀들과 손자녀들을 힘 닿는대로 돕고 베풀며, 이웃과 친척들, 친구들과 삶을 나누면서 오순도순 정겹게 살아가고 있다. 배우자와 사별한 후에도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잘 꾸려가는 것은 여성노인이다.

여성들은 전 생애를 걸쳐서 딸,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혹은 근로자나 다정한 이웃으로 다양한 역할을 하고,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타인을 돌보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여성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화에 대해서 보다 잘 적응한다. 오히려 불리한 위치에서 힘든 삶을 살아왔기에 터득한 여성들의 융통성과 적응력, 관계형성능력은 역설적으로 노년기의 삶을 꾸려가는 데 힘이 된다.

반면 일생동안 여성의 보살핌을 받으며 가부장제 사회에서 혜택을 받으며 살아온 남성노인들은 은퇴와 더불어 익숙하지 않은 사적인 세계로 전환할 때 상당한 단절과 적응상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한 독립적인 존재로 간주되어온 남성들 특히 노인들은 배우자가 없이는 끼니를 해결하는 일상생활도, 자녀들 및 친척과의 인간관계도 유지하기 힘들다. 나이든 남편은 가정에 별 도움 안 되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부인과 사별하게 되면 대개는 고독과 고립속에서 궁색한 삶을 영위하게 십상이다. 최근 여성노인보다는 남성노인의 자살이 더 많다는 사실은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젊은 시절 남성들이 누렸던 혜택이 노년기에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다고도 볼 수 있다.

흔히들 노년기에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려면 건강과 돈, 그리고 든든한 가족이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여성노인들이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지 않고, 남성노인들이 가족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차를 고려한 노인복지정책과 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의식 변화를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전생애를 걸쳐 남녀의 역할과 생활세계를 분리시키고, 양성평등을 저해하는 가부장적인 요소들이 극복되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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