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정 룡 강릉대 교수·도 민속학회장

▲ 장정룡 강릉대 교수·도 민속학회장
대선만 되면 많은 공약들이 난무한다. 그러한 공약(公約)들이 실천가능한 일인가는 훗날 빌공(空)자 공약으로 전락하고 마는 일들이 부지기수다. 오죽하면 후보들의 공약을 검증하는 매니페스토 점검운동이 전국에서 벌떼처럼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사는 강원도는 대선 무렵이면 심한 몸살을 앓는다. 대권도전자들의 안중에 강원도는 변방의 중소도시 정도로 취급되는 듯하다. 그래선가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형국’으로 강원도 표를 모두 자기표로 인식한다.

그만큼 지방색이 옅다는 말이지만 정작 이곳에 사는 우리들은 속상하다 못해서 몸살이 날 정도다. 자괴감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어느 도처럼 캐스팅보트를 쥐고 흔들어 수십만 표로 당락이 결정되는 변수의 핵으로 등장하지 못하니, 말로만 강원도를 발전시킨다는 공약에 지쳐버린 지 오래되었다. 공약대로라면 동서고속대로도 벌써 여러 개 만들어졌어야 한다. 말로만 지방분권, 국토균형 발전을 외치나 정작 실행계획에 들어가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각종 규제대상 제일도가 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니 경제선진도나 삶의 질 일등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 닭 잡아먹는 방식’으로 스스로 힘들게 해 나갈 수밖에 없다. 이런 일에는 남을 비난하기보다 돌이켜 자성이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 온 것은 없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교산 허균 선생은 호민론에서 갈파했다.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자는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은 물이나 불, 범이나 표범보다도 더 두렵다”라고. 그렇다. 엄청난 태풍 루사와 무서웠던 동해안 산불도 슬기롭게 극복해낸 유근(柔謹)한 강원인이다. 강한 것을 이기는 부드러운 풀잎 같은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도민들이다. 강원도 사람도 이 나라 백성이다. 똘똘 뭉쳐서 큰 힘을 보여야 대접한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이는 이기적 분파적 사고가 아니라 스스로 대접받고자 하는 최소한의 저항이라고 해야 옳다. 그러므로 이번 대선은 강원도를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을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 도민이 힘을 모은다면 대권의 충분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모두가 구애해 마지않는 어느 도처럼 행정수도를 옮길 힘이 생기는 것이다.

강원도 수도론이 불가한 논리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일찍이 신라 때에도 제2수도인 동원경, 북원경이 위치한 바가 있으니 환경수도론을 멋있게 펼친다면 세계적 도시가 될 수 있다. 어차피 개발이 어렵다면 강력한 자연환경보호와 생태보존정책을 통해서 삶의 질을 담보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생태환경수도로 살길을 찾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개인적 견해지만 이러한 정책을 펴는 대권후보자가 있다면 지지해 주고 싶다. 개발할 것과 보존할 것을 확실히만 한다면 이러한 제3의 길로 강원도가 나아가야 된다고 믿는다.

이제 ‘대통령을 못해 먹겠다는 사람’을 뽑아서는 안 된다. 홍수환 선수가 맨주먹으로 칠전팔기하여 ‘엄마, 나 챔피온 먹었어’라고 외친 감동적인 말도 아닌 바에야 힘겹게 살아가는 국민을 힘 빠지게 하는 일이다. 대통령직이 무슨 구황식품이나 팔도 먹거리가 아님이 분명하니 말보다는 그 직에 따른 엄청난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며 실천궁행해야 한다. 논어에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 하였다. 한마디로 ‘답게’라는 뜻이다. 임금은 임금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식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이 임금의 자리는 임금의 자리에 맞는 무한한 고뇌와 엄청난 책임이 부가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권병환이 심각하여 고질병이 되면 민주적 절차나 과정,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나서서 어떻게 국민의 어버이가 된다는 말인가. 털어서 먼지가 많이 나는 사람은 국민 앞에 서면 안 된다. 떡고물을 묻힌 사람도 국민 앞에 나서면 안 된다.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는 사람도 국민 앞에 나서면 안 된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이 나라는 대통령의 나라가 아니라 국민의 나라다. 강원도민도 이 나라 국민이다. 때가 되면 두메산골이나 벽지어촌에서 농사짓던 호미와 낫을 치켜들고 그물과 산대자루를 어깨에 둘러맨 채 항민(恒民) 원민(怨民)과 함께 나라를 바꿀 호민(豪民)으로 나설 무섭고 두려운 국민임을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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