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송씨 소설 ‘가부루의 신화’
가상의 고대 부국 설정 이야기 전개 흥미
시로 망한 강대국 인용 현대 지식욕 풍자

▲ 책 가부루의 신화
‘가부루의 신화는 이제까지 한 번도 알려진 적이 없는 이야기다. 신화뿐 아니라 가부루라는 나라조차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1998년, 강원도의 고성군 미산면에 자리잡은 중미산의 한 동굴에서 고대문자가 찍힌 수백점의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최대의 역사적 발견이 될 뻔한 점토판이 사라지면서 가부루국의 신화와 역사를 담은 기록은 빛을 보지 못했다.’

‘서울에 댄스홀을 허하라’, ‘장미와 씨날코’, ‘인간과 사물의 기원’ 등을 통해 현대문명의 근간에 대해 비판적인 성찰을 보여준 김진송 씨는 소설 ‘가부루의 신화’(푸른역사)를 통해 현대사회의 이면과 역사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가부루국은 저자가 만들어낸 가상의 고대 부족으로, 소설은 허구다. 구효서 씨의 소설 ‘비밀의 문’을 연상시킨다. 주인공인 ‘나’는 어느날 예상치 못한 한 통의 부음을 받는다. 그것은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대학 시절 은사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더욱 뜻밖인 것은 선생의 유품상자도 함께 전해졌다는 것이다.… 상자 안에는 어지러운 기호와 그림과 글씨로 빼곡한 몇개의 두툼한 노트와 잡다한 서류뭉치만 들어 있을 뿐이다.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듯하던 사건은 또한권의 숨겨진 노트를 통해 실마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고성군 미산면에서 발견된 점토판에는 가부루국의 신화와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고대 언어학의 권위자인 장근호 선생이다. 선생은 고대 신화, 고고학, 문자학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 끝에 점토판의 글씨를 해독해 냄으로써 가부루국을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처음 동굴을 찾은 지 5년이 지나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그의 눈앞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새로운 학문세계를 떠받쳐 줄 것같던 점토판은 사라지고 거대한 진흙더미만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로써 선생이 밝혀 낸 가부루의 신화와 역사도 아무런 근거가 없는 허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순간의 처절하고 끔찍한 기억은 몇 달 뒤 선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까지 어어졌다. 가부루 이야기는 지혜와 문자를 독점한 강력한 부족의 흥망에 관한 이야기다. 장근호 선생은 가부루 신화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옛 문집에 실려 있는 가부루국에 관한 기록을 발견하는데, 이 나라의 성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해안 고성현을 중심으로 위 아래 각 2백리에 걸친 땅에 가부루국이 있었다. 그들은 시를 짓고 노래하기를 즐겼으며, 결국은 시와 노래로 망했다.’ 소설의 내용은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사회와도 연결된다. 저자는 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한다.

“그 문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다. 새발자국에 대한 완전한 소유의 욕망을 숨길 수 없다. 학문적 호기심, 진리에 대한 갈망, 그건 낯간지러운 수사일 뿐, 그것은 그럴듯하게 포장된 합리화일 뿐이다. 학문의 성취 뒤에는 언제나 속일 수 없는 배타적 소유의식이 지배한다. 대상으로 삼고 있는 영역에 대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소유 욕구, 그게 학문적 호기심이라고 부르는 원천이다.” 장근호 선생의 말이다. 지식에 대한 이러한 독점욕은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화두로 볼 수 있다.

지식 권력의 문제는 신화 밖으로 나오면 ‘나’와 대학교수로 있는 지헌과의 만남에서도 다시 나타난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가부루 이야기를 그저 진실성과 과학성이 결여된 아마추어 엉터리 학설쯤으로 통박하던 지헌은 그것이 국어학의 최고 권위자인 장근호 선생의 연구 결과라는 것을 알고는 태도가 돌변한다.

“장 선생의 학문적 권위가 이미 어느 정도 진실성을 담보한다고 봐야지. 때로는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업적이나 학문적 권위가 사소한 물증보다 더 결정적일 수 있는거지.”

저자는 역사란 사료를 전유하려 하는 개인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질문한다. 이수영 sooyou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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