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의 아버님 신명화(申命和) 선생은 강릉 최씨 최응현(崔應賢 공·병·형 삼조참판, 충청도관찰사, 대사헌)의 외손자이다.
1965년 11월 10일 강릉 최씨 후예인 최옥자(세종대학교 설립자) 박사와 김미희 여사가 공동으로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 화백에게 신사임당 영정 제작을 의뢰하여 강릉시 오죽헌 몽용실(夢龍室)에 봉안하게 되었다.
최옥자 박사께서 신사임당(1504∼1551) 영정을 제작하게 된 동기는 조선시대의 대학자 율곡 이이(李珥)선생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여성의 사회활동이 엄격히 제한되던 시대에 가정에서 충실히 규범을 지키며 회화와 서예에 뛰어난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칭송되어 후세 여성의 귀감이 되었으며, 현대 여성의 선구자 역할을 한 그 은덕을 기리기 위하여 제작하였다고 한다.
그 후 정부에서 1986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신사임당 영정을 2006년 1월 11일자 조선일보에 정항교 오죽헌 박물관장이 “앞으로 새 화폐 여성모델에 신사임당이 채택되도록 사전 준비 차 친일화가 김은호 화백작품을 이종상 화백작품으로 바꾸는 것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등재되었다.
이 기사를 본 최옥자 박사께서 전화를 걸어와 강릉시장을 방문하여 신사임당 영정을 회수하여 최옥자 박사가 세운 세종대에 봉안(奉安)하겠다며 동행을 요구했다. 좀 기다려 주면 내가 강릉시장(당시 심기섭)에게 연락하여 사유를 확인한 후 조치하자고 만류하고 본인이 강릉시장에게 연락한 바, 강릉시장도 모르는 사이에 신문기사가 나왔으니 죄송하다며 최옥자 박사님에게 잘 선처토록 중재를 요청했다.
같은해 3월 21일 오전 서울 명동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강릉시 문화관광국장 외 3人이 상경하여 최옥자 박사, 최돈웅 전 의원, 본인 등 4명과 상봉하여 강릉시장의 정중한 사과로 최옥자 박사께서도 이해하시고 2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첫째, 강릉시 오죽헌 몽용실에 있는 신사임당 영정 앞에 최옥자, 김미희 두 사람이 기증하였다는 명패를 세워 줄 것.
둘째, 강릉시장이 신사임당 영정을 오죽헌 몽용실에 영구히 모실 것.
강릉시 문화관광국장으로부터 첫 번째 항목은 즉시 실천할 것이나, 두 번째 항목은 강릉시장 선거가 끝나는 대로 신 시장 명의로 실천에 옮기겠다는 약속 하에 합의 하였으며, 그 후 2007년 2월 15일 강릉시장으로부터 이행 각서를 교부받고 잘 해결되었다.
만일 1965년 신사임당 영정을 최옥자 박사께서 제작하지 않았다면 금번 오만원권 지폐 등재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최옥자님의 선견지명과 선구자적 정신을 높이 평가하며 강릉시민의 자랑이며 전 국민의 경사라는 것을 느끼며 출향인사로서 고마운 마음을 영원히 가슴에 간직하고 살겠다.
최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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