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춘 언론인
대통령 선거를 50여일 남겨둔 1960년 9월 26일 저녁 9시30분부터(동부시간) 1시간 동안 미국 국민들은 숨을 죽이며 TV를 지켜봤다. 미국은 물론 세계에서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들의 TV토론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1억6000여만명의 유권자들 가운데 4000만∼4500만여명이 TV를 시청했다. 그동안 대다수 국민들은 TV를 통해, 혹시나 자기 고장에 들른 후보들의 연설을 들었으나 양대 후보가 TV에서 토론을 함으로써 제한된 시간이지만 후보들의 인품 능력 자질 의지 책임감과 공약 등을 비교 검증할 수 있었다.

이날 1차 토론 전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닉슨·케네디가 60대 40 또는 70대 30이었던 것이 토론으로 역전됐고 놀란 닉슨이 2∼4차토론 때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등 분전했으나 시청자는 2000만, 1000만, 800만으로 줄었다. 첫 토론에서 부동층이 케네디 쪽으로 기울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TV토론은 각당의 대선 후보들, 특히 연임을 노리는 대통령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 되어 대선 때마다 많은 국민들의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무려 16년 동안 중단됐다가 1976년 포드 대통령과 카터후보간의 토론으로 부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국의 TV토론은 초기에는 3대방송사가, 1976∼1987년은 여성유권자연맹이 주관했고 1988년부터는 각계 인사들이 망라된 시민단체격인 대통령토론위원회가 관장해오고 있다.

그런데 선거 후보들의 TV토론을 의무화하는 등 법적으로 제도화한 나라는 전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즉 1997년 15대, 2002년 16대 대선 때는 한국방송협회가 토론을 주관했으나 2004년 3월 선거법을 개정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를 중앙선관위산하에 독립·중립적 기구로 설치해 대통령 선거를 비롯 모든 선거의 후보토론을 시행케 했던 것이다.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 돈 적게 드는 선거를 지향하다보니 이번 대선에서 허용되는 선거운동은 벽보·공보·신문방송광고·방송연설·인터넷 운용 및 거리연설 등이 고작이다. 그나마 후보들이 한자리에 앉아 토론을 벌여 능력 자질 경륜 국가관등을 비교 검증할 수 있기는 TV토론뿐이다. 그런데 이번 6일을 시작으로 11일과 16일(13일 군소후보토론) 3차례 실시되는 후보토론은 효율성과 생산성면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 1997년과 2002년 토론 때에는 후보가 각 3명씩이어서 상호토론이 주종을 이뤘으나 이번 경우 참석자는 6명이 되어 2시간 동안 본격적인 상호토론은 구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후보들이 각각 전국을 돌며 꿈같은 공약들을 마구 쏟아낸 것과는 달리 후보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가발전의 비전과 국정의 쇄신방향에 대해 토론함에 따라 유권자들은 짧은 시간동안이나마 후보들의 각종 실력의 함량을 측정하고 비교 검증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TV토론은 말의 경쟁이 아니다. TV토론은 국민에 대한 진실고백의 경쟁이다. TV토론이 과거 닉슨과 케네디에게서처럼 독이 될 것인지 약이 될 것인지는 후보 자신의 준비와 자세·마음가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토론이 없는 선거는 민주선거가 아니다. TV토론의 결과는 막판에 접어 든 이번 대선판세의 우열을 가리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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