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선 지 숲 해설가
구룡령 옛길은 백두대간에서 가장 산림이 울창한 지역이며 한국의 대표적인 옛길이다. 양양 서면 갈천리에서 홍천내면 명개리를 연결하는 영서와 영동사람들이 설악산 점봉산, 오대산 등 백두대간 장벽으로 산지와 해안 지역을 오가는 것이 힘들었던 두 지역을 연결해 준 유일한 통로였다.

속초, 양양 사람들은 가파른 한계령 미시령을 못 넘고 주로 구룡령을 통해 홍천, 평창, 서울로 다녔다.

옛길 가는데 그 원형이 수백년 전의 모습으로 가장 잘 보존 된 길이다. 통일신라의 최치원이 이 길을 넘었고 의상대사가 이 길을 넘나들었다고 한다.

지리에 밝거나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도 구룡령 옛길을 모른다. 모두가 현 56번 국도가 구룡령 옛길인 줄 알고 있으나 사실 구룡령 옛길 아흔아홉 굽이가 실제 구룡령 길이다. 구룡령 옛길에는 조상들이 어떻게 길을 다녔는지를 보여주는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요즘 백두대간을 넘어 보면 험한 지형이 실감난다. 그래서 이 급경사의 산지에서 말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상상하기 힘들다. 구룡령 길은 여러번 굽이를 주어서 발품을 더 팔더라도 힘겨움이 덜 하도록 자연스럽게 형성해 놓아 옛선조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숲과의 조화도 너무나 잘 어울려 똑같은 고도의 등산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유가 길에 묻어 있다. 숲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으면서 다니기에 편안한 길이 바로 이 길인 것이다. 구룡령 길이야 말로 봄이면 형형색색 꽃이 피고 여름에는 울창한 숲이 하늘을 덮고 가을이면 수십종류의 단풍이 우리를 반겨주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이란 것을 느낀다.

구룡령 옛길에는 굽이굽이 백성의 꿈과 희망 그리고 아픔과 좌절이 녹아 있다. 일제 때 철을 캐갔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철광굴과 삭도가 녹슨 모습이 예전을 떠올리게 한다. 농경사회의 시작과 철기문화가 시작되면서 양양 일원에 공급한 철기문화가 열렸고 농기구의 원재료를 구룡령 옛길 한쪽에서 생산해 낸 것이다. 일제강제 수탈의 현장이 있었던 점도 흔적을 통해 확인됐다.

숲으로 펼쳐진 구룡령 옛길의 또 다른 명물은 금강소나무이다. 1980년대 경복궁을 복원할 때 이곳에서 통나무를 가져갔고 베어진 소나무 자국이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도 남아 있는 200~300년된 금강소나무가 붉은 기운을 띠고 하늘을 찌를듯이 뒤덮고 있어 여행자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래서 솔반쟁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군 경계를 위해 몸을 바쳤던 청년때문에 묘반쟁이가 있으며 장례식 때 쓰던 횟가루를 캐갔던 횟돌반쟁이 등의 자국이 그대로 있다. 40여종의 잡목은 하늘을 덮고 수백년 된 나무들이 풍설에 못이겨 버티는 모습이 정말 삶의 고뇌를 연상케 한다. 하산하면 갈천천이 반갑게 맞으며 이런 청청 개울도 아직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웃나라 일본 북부의 북알프스 아래 다카야마시의 옛길은 1년에 300만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처음으로 구룡령 옛길을 포함해 4개소 옛길을 명승지로 문화재청으로 고시 중에 있다.

강원도의 유일한 도로 문화재로서 구룡령 옛길을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걸으며 옛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을 뒤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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