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경찰서장 박융길

한겨울 남한의 최북단 종착역인 월정리역은 가설무대의 세트처럼 을씨년스럽기만 합니다. 정다운 이웃을 떠나보내거나 사랑하는 자식을 전송하거나 마중 나오는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며 고추잠자리가 해맑은 가을 하늘을 한가로이 날아 다니는 우리 모두의 고향과 같은 그런 역이 아닙니다.

6.25동란후 50년간 한번도 기적소리가 들리거나 기차가 멈춘 일이 없어 안보관광객들에게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애절한 문구와 부서진 기차의 잔해만이 동족간 전쟁의 참상이 어떠하였는지를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월정역이야말로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잊혀지질 않을 이산의 아픔을 체험케 한 귀중한 역으로 길이 보존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원산쪽을 가리키는 이정표만은 숫한 비,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여느 역이나 마찬가지로 선명하게 표시되어 언젠가 떠날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며 한결같이 서있고, 월정역 저편 너머로 보이는 DMZ는 남과 북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4계절 한결같이 평온한 모습으로 철새들의 낙원답게 고요를 달래며 대지를 잠재우고 있습니다.

이맘때쯤 월정리 통일전망대에 어둠이 깔리고 창밖에 함박눈이라도 내리면 따스한 촛불하나쯤 밝히고 그리웠던 북녘동포와 마주앉아 긴긴 세월 못 다한 사연들을 엮으면서 울음 섞인 웃음꽃 피워보는 낭만이라도 가져보면 어떠할까요?

철원은 이제 분단된 군이 아니고 외롭지도 않을 것입니다. 남북이 대화를 시작하였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 실질적인 화해와 평화의 장이 마련될 것이며, 머지않아 매년 잊지 않고 찾아드는 철새와 같이 철원은 누구든 즐겨 찾는 “평화의 도시”로 새롭게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지역에 있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라도 소중히 생각하고 철원의 옛모습 그대로를 유지 보존하는데 힘을 합쳐야 한다는 태봉국 궁예의 목소리가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겨울바람에 실려 가슴속을 타고 흐르면서 포성이 멈추어진 적막의 밤은 소리없이 깊어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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