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석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강원매니페스토추진본부 집행위원장
이번 대선처럼 한 후보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인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뚜렷한 쟁점도 정책에 대한 토론도 실종된 선거에서 후보자들의 공약을 평가하고 검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매우 고통스럽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매니페스토 운동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한 가장 큰 이유는 이제 강원도는 무책임한 일부 정치인들의 말놀음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의식과, 이번 선거 뿐 아니라 앞으로 남은 18대 총선을 비롯한 미래의 선거들 역시 정책선거를 지향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사실 지방선거나 총선과 달리 대선은 국가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만큼 지역관련 공약이 유권자들의 판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지역이 중요한들 나라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으며 결국 나라가 잘되지 않으면 지역 역시 잘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통령은 분명 국회의원이나 시도지사, 시도의원과는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처럼 오랫동안 무대접·푸대접에 시달려 낙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지역에 대한 공약 역시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매니페스토 운동 차원에서 후보자들에게 보다 신뢰성 있는 지역관련 공약을 요구하고, 이를 공정하게 평가하여 유권자들이 투표를 위한 판단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강원매니페스토 추진본부에서는 지난 11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공약 이행정도를 평가하여 발표하는 한편, ‘살기좋은 강원도를 위한 4대 의제 10대 과제 그리고 34대 세부과제’를 발굴하여 제시하고 정당들에게 이에 입각하여 자신들에게 맞는 공약을 개발하도록 전달한 것이다. 하지만 각 후보자의 강원도 관련 공약을 받아든 순간 우리의 기대가 달성될 수 없으리라는 것은 한 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6명의 유력 주자들이 제시한 정책들은 우선 형식면에서, 그나마 초보적인 요건 정도를 겨우 갖춘 이명박 후보와 매니페스토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나름의 방향성을 가진 권영길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네 후보가 제시한 공약들은 거의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여전히 구체성을 결여한 상태로 선언적이고 과장되며 그저 지역의 숙원사업들을 나열적으로 제시한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 공약들이 각 후보자 진영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정제하여 제시한 것이기보다 선거에 임박하여 급조된 것들이었다는 현실이었다. 물론 정당의 도단위 조직들이 가진 인적·물적 한계도 이런 문제들을 만들어내는데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선거를 열흘 정도 앞둔 시점이 돼서야 비로소 모든 후보들의 공약이 입수 가능할 정도였다.

이런 여건에서 방대한 양의 공약들 중 어떤 것이 과연 실현가능한 것인지, 어떤 공약들이 보다 바람직하며 헛공약 내지 선심성 공약은 없는지 등을 엄밀한 기준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제시하려던 운동본부의 평가작업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우선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과거의 대선 혹은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에서 제시된 공약들이 재탕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도민들의 바람을 집약한 매니페스토추진본부가 제시한 방향성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지나친 헛공약이나 선심성 공약은 없는지 등을 정당 간 비교를 통해 기본적인 수준에서 제시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 제시한 결과가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송구함을 느낀다.

그나마 면밀히 들여다보고 누가 도에 유리한 정책을 펼쳐줄 후보인지 힌트를 찾아내는데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정도가 한국 정치, 그것도 지방수준 정치의 현주소임을 통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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