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춘 언론인
우리나라에서 정권인수 문제가 처음 제기된 것은 1987년 12월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 후였다. 당시 물러나는 전두환 대통령 측은 같은 집권당(민정당) 후보가 당선된 만큼 전권인수 운운은 의미가 없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노 당선자 측은 국민직선 대통령으로서 5공화국 정권과 차별화해야 한다며 인수 팀을 구성했고 정부는 마지못해 대선 한달 뒤인 1988년 1월 18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취임준비 위 설치령” (대통령령12378호) 을 제정했다. 인수 위가 아닌 취임준비위라고 명기한 것이다. 그 후 정부는 1992년 14대 (김영삼) 1997년 15대(김대중) 2002년 16대 (노무현) 당선자의 정부인수를 위해 한시적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설치령을 만들었고 2003년 2월4일에는 대통령직인수에 관한 법 (16조 부칙 3조)을 제정했다.

역대 인수위는 대체로 분야별로 5∼6개 분과위와 전담 팀(반)을 두어 운영했는데 국정추진과제의 경우 13대는 탈 권위주의와 지역감정해소, 14대는 문민개혁, 15대는 경제를 중심으로 한 100대 과제, 16대는 경제·사회개혁에 중점을 둔 12대 과제를 정했다.

지금까지 4차례의 인수위 활동 중 모범 케이스는 물론 수준급도 찾기 어렵다. 정권인수위의 임무는 한마디로 국정현황의 점검과 파악, 그리고 계획수립이지 집행기구가 아니다. 그럼에도 마치 정부를 접수하는 점령군 같은 자세에다 이것저것 고압적으로 지시, 집행하려 해 정부와 마찰을 빚은 예가 적지 않다. 인수위는 우선 정부의 현황을 정확히 점검한 후, 선거공약을 다듬어 5년간 국정운영의 순위와 시간표를 작성하는 한편 합리적인 인사원칙을 당선자에게 건의하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인수위를 방만하게 운영한 것은 2002년 노무현 당선자 진용이다. 과거 정치인 중심으로 구성하던 인수위에 정치인은 배제하고 사회 각계, 주로 진보개혁성향의 인사들을 기용했다. 이들 외에 60여명의 자문위원을 둔 국민참여센터와 정치개혁연구실 등을 설립하여 각종 로드맵을 양산했다. 특기할 것은 노 당선자가 분과위원회에 참석하는 등 인수위를 직접 지휘한 것이다.

그러나 역대정부는 인수위가 작성한 국정추진 안을 제대로 충실하게 따르지 않았다. 물론 현실 상황의 급변도 있었으나 대통령의 잦은 계획변경과 외면, 무시, 포퓰리즘에의 치중 등으로 인수위의 건의서는 거의 휴지화 되기도 했다.

이제 이명박대통령당선자는 곧 정권인수위원회를 발족시킨다. 인수위는 선거 때 공약한 경제대통령, 실용정부, 나라의 선진화와 삶의 질 향상, 작은 정부와 효율적 정부, 사회·교육 등의 개혁과제들을 정리하여 추진계획표를 만들 것이다.

필자는 이 당선자에게 역대 인수위의 형식적이고 방만하고 잘못됐던 시행착오들을 교훈삼을 것을 권하고자 한다. 첫째, 인수위는 작은 규모의 능률적, 생산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다음 친이명박계만이 아닌 유능한 각계전문가를 망라해야 한다. 셋째, 선거에서 나타난 열화 같은 국민의 요구를 바탕으로 국정의 운영순위를 정하는 게 필수적이다. 넷째, 모든 대소 과제를 5년간 모두 완결하겠다는 자세는 불필요하다. 끝으로, 뭐니뭐니해도 경제회생과 국민통합을 최우선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수위 구성은 이 당선자가 취임 전 처음으로 단행하는 공직 인사의 예행연습이다. 인수위의 인선과 운영은 취임후의 정부인사의 원칙과 국정운영의 의중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지역과 학벌 등 각종 인연보다 능력과 전문성위주 및 국가발전의 차원에서 대국적인 열린 인사를 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이 당선자의 인사와 조직구성, 운영의 첫 작품을 주시할 것이다.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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