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의 대표적인 문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 ‘정선아리랑’을 꼽는데 주저치 않을 것이다. 아리랑의 시원으로 꼽히는 강원도에서 남북강원도아리랑제전이 통일문화 교류의 한 사업으로 추진되면서 아리랑이 통일문화의 아이콘으로 또다시 변신하고 있다.

처음엔 강원도 산간에 살던 사람들에 의해 처음 불려진 뒤 그 다음엔 논 농사를 하는 들판에서 불리워졌고, 그 이후엔 영화 주제곡, 연극, 대중가요, 문학 등으로 영역이 확대됐다. 일제 강점기 이후 망명과 이민이 이뤄지면서 아리랑은 중국과 러시아, 미국 등지 해외로 흩어지며 또다른 아리랑으로 전승되고 있다.

21세기 통일시대의 기운을 열어가는 이 시점에서 아리랑은 남북공동체를 확인하는 새로운 이미지의 문화적 기호로 의미를 넓혀가고 있다.

통일문화 아이콘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아리랑의 끈질긴 생명력에 관심이 집중되는 요즘 아리랑의 시원, 곧 아리랑의 원래 모습을 밝히고, 아리랑의 문화적 상징성이 더 큰 비중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한 학술 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정선아리랑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저서‘정선아리리의 연구’를 출간한 姜謄鶴 강릉대 국문학과 교수(50)는 최근 발표한 논문‘향토민요 아리랑의 존재양상과 장르적 동향’에서 ‘아리랑은 오늘의 문화현상을 이루기 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확장해왔다’고 밝혔다.

아리랑의 갈래를 크게 민중들이 생활속에서 부르던‘향토민요 아리랑’, 잡가의 하나로 만들어부른 민요풍의‘통속민요 아리랑’,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대중가요 아리랑’등 세가지로 나눈 姜교수는 아리랑의 시원이 된 향토민요 아리랑은 전국의 94곳중 강원도가 40곳, 충북 18곳, 충남 13곳 등으로 도내가 월등히 많게 나타나 강원도 중심으로 출발했다고 분석했다.

또 “아리랑이 많이 불려진 곳을 보면 전부 산맥을 낀 곳으로 아리랑은 가장 먼저 산간노래로 불려졌으며 그 이후 들판으로 확장돼 들노래로 진출했다”면서 “지금은 아리랑의 후렴이 발달했지만 처음에 산간노래로 존재할 때는 정적인 상태로 후렴이 없었으며, 들노래로 진출하면서 아리랑은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나아갔다”고 했다.

姜교수는 “아리랑의 문화적 기호화는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고, 이 기호는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기능하며 그 의미를 더욱 넓히고 있다”며“남북 소통이 활성화되면서 아리랑의 기호적 상징성은 더 큰 비중으로 존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朴美賢 mihyunpk@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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