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것은 여야 간의 대립과 정쟁으로 정치가 늘 어지럽고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치는 1년은커녕 몇 달 앞도 내다 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나는 임기 안에 반드시 예측 가능한 정치가 되게 하겠습니다”

1993년 2월 25일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이 한 말이다. 김 대통령은 취임직후부터 잇따라 중대 조치를 깜짝쇼식 충격요법으로 단행했다. 군내의 하나회 해체, 재벌들로부터 정치자금 10원도 안 받기, 법에도 없는 대통령 재산공개 등 화끈한 조치에 대해 국민들은 놀라면서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하겠다는 김영삼의 큰 소리와 공약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공약(空約)으로 끝났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한국의 정치는 한 달 뒤는커녕 1주일 뒤 또는 내일을 예측할 수가 없다.

대망의 2008년 새해가 시작됐다.

올해는 우리 겨레와 나라에 있어 매우 뜻 깊은 해이다.

대한민국 건국60주년이 되고 민주헌정을 시작한 지 60년째가 되는 해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난 60년 동안 집권자와 집권세력의 독재와 장기집권의 야욕 등으로 헌법이 9번이나 바뀌고 5·16, 10월 유신, 12·12 및 5·18 등의 쿠데타가 발생하는 등 파란만장한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60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민주정치의 연습과 실험을 60년간 해온 이상 지금쯤은 투명하고 깨끗한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할 수 있으련만 정치의 모습과 수준과 질은 여전히 후진국형이다.

올해는 중요한 정치적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하나는 내달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는 것이다. 이번 퇴임과 취임은 우리헌정사상 투표에 의한 두 번째 정권교체이자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10년간의 진보정치권에서 10년 만에 보수정권으로 환원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또 하나의 큰 행사는 오는 4월 9일 실시되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이다. 작년 말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 승리한 정당과 패배한 정당 모두 수준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갈등과 긴장관계를 또 요란한 진통과 내홍을 겪고 있다. 승자인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주류와 박근혜 전 대표의 비주류 간의 당정 분리냐 단일성 협력체제냐와 총선의 후보공천의 시기를 놓고 미묘한 갈등 기류가 흐르고 있다.

대통합신당 민주노동당 민주당 등은 대선패배에 따른 인책과 당의 쇄신문제를 놓고 각당이 뿌리 째 흔들리고 있다. 신당은 패배 책임과 친노-반노파 간의 대립으로, 민노당은 자주파와 평등파 간의 북한에 대한 종복주의 탈피 여부를 놓고, 민주당은 박상천 대표의 유임과 반대에 관한 내분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따지고 보면 18대 총선 공천에 따른 세 확보, 당의 주도권 다툼이다. 창조한국당은 이달 중순에 총선대책을 밝히고 무소속의 이회창 전 후보 측은 신당창당을 추진 중이다. 대선패배의 큰 원인이 잘못된 구태정치, 잘못된 노선과 정책·공약이므로 국민의 뜻은 각 당의 자기쇄신과 전면적인 환골탈태, 책임정당다운 자세와 역할을 다하라는 것이다. 이제 대선 당선자의 이긴 정당은 물론 패배한 정당들도 18대 총선에 말로만이 아닌 효율적 생산적인 정치, 상생과 대회의 정치를 공약으로 내걸어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민주헌정 60년부터는 예측 가능한 정치, 국민이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정치를 펼쳐야 할 것이다.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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