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은 고단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임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춘천 출신 李원홍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선총회 총회장(75·인천시 남구 용현동)은 요즘 일제시대 독립운동지사들의 재판기록 번역에 생의 마지막 힘을 쏟아붓고 있다.

이 일을 하게된 것은 독립운동에 참여한 선친의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탁월한 일본어 실력에 해박한 법률지식까지 갖춘 그에게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청탁이 끊이지 않기 때문. 지금까지 번역한 재판기록만도 극작가 유치진 선생이 연루된 ‘동경학생예술좌 사건’과 ‘미술가 김복진사건’등 언뜻 헤아려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

목회생활을 거쳐 인생의 황혼기에 독립운동사 연구에 뛰어 든 그의 인생 이력서는 뜻밖에도 다양하다.

춘천 우두동에서 태어난 그는 춘천농고와 춘천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았다. 춘천고, 춘천여고, 원주고, 횡성실고, 춘천농고 등이 50∼60년대 그가 재직했던 학교들.

강원도를 이끌고 있는 지도급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의 제자들이다.

이후 교편을 놓고 서울로 거처를 옮긴 그는 일반 직장생활을 하다 뒤늦은 나이에 장로교 총회신학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82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서울 통천교회, 선천교회 등의 담임을 거쳤으며 현재는 목회에서 은퇴했다.

李목사는 사진에도 조예가 깊다. 일찌감치 사진을 시작한 그는 1955년 제2회 강원도 아마추어사진협회전 입선을 시작으로 30여건의 수상경력을 갖고 있는 원로 작가. 60년대 후반에는 사진협회 도지부장을 맡았으며 90년대 초반에는 서라벌예술신학교 영상매체과에서 후학들을 지도했다.

요즘도 틈만나면 카메라를 들고 들로 산으로 나간다는 그는 지난해 서울시 주최 ‘제1회 물이 있는 풍경사진 공모전’에 춘천의 호반을 담은 사진으로 입선 노익장을 과시했다.

李목사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젊은 시절을 함께 한 제자들이 자주 생각난다”며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성실하게 살아달라”고 새해 안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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