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지 현 춘천교대 교수
새해 벽두부터 흘러나온 정부부처의 통폐합설이 곧 가시화될 조짐을 보인다. 그 살생부의 맨 위에 여성·가족부가 있는가보다. 그런 가운데 2005년에 호주제가 폐지되어 민법이 개정되고 ‘가족관계등록법률’이 2007년에 제정되어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법적 제도로 보면 이제 대한민국은 여성차별과 가족의 안정성을 드높이는 선진 국가의 면모를 갖추었으므로 여성·가족부는 아예 사라져야 할 행정부처일지도 모른다.

호주제가 없어지는 대신 새로운 가족법률은 부성주의 원칙이 사라지고 성(姓)의 변경이 가능하며 친양자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호적대신 등장하는 가족관계등록부는 한 사람마다 하나의 등록부를 가지며 부모, 배우자, 자녀만 기록되게 된다.

그동안 호주제의 부성주의 원칙은 아버지의 성(姓)과 본(本)을 자식이 승계하는 것에 잘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새 법률은 선택적으로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고 본적이 표시되지 않는다. 혼인과 동시에 ○○씨 가(家)로 입적하여 아들을 낳아서 그 집안의 대를 이어 충성하는데 세월을 보내온 많은 여성들의 눈물이 이제는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사실 이것은 우리의 미풍양속도 전통도 아니다. 조선시대 초기의 족보에도 자녀를 낳은 순서대로 기록하고 아들이 없으면 딸의 딸의 딸까지 기록하는 인본주의적이고 평등한 자손관을 가졌던 나라이다. 퇴계 이황 선생의 이름이 문화 류씨의 족보에서 몇 차례의 성(姓)의 변화를 거듭하여 발견할 수 있었음도 이 때문이다. 또한 양자를 들일 때에는 반드시 무후(無後)한 경우에만 여성의 집안과 합의하에 하던 풍속이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차 처족을 제거하고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부계혈연집단을 강화하는 도그마에 의한 것이었다.

새로운 법률은 자녀의 복리를 위해 성(姓)의 변경이 필요한 경우 법원에 성과 본의 변경심판을 청구하는 방법과 새 아버지가 그 자녀를 친양자로 입양하는 방법에 의해서 가능하다. 친양자 입양은 이전 부모와의 완전한 법적 단절을 의미하고 새로운 부모의 혼인중의 자로서 친생자관계를 인정하는 제도인 것이다. 따라서 친양자 입양과 달리 법원에 심판 청구를 하는 성과 본 변경은 친부모와의 재판이 필요하지 않다. 새로운 법률이 시행되면서 성과 본 변경 청구가 각 지역별로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에 불과하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70이 넘은 어머니가 계신데도 출가하지 않은 나와 내 여동생이 호주승계 포기각서를 써야만 어머니가 호주가 된다는 말에 단지 귀찮아서 멋모르고 한동안 호주노릇도 해 본 나는 혼인신고를 하면서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본적지가 바뀐 것에 또 한번 충격을 받았었는데 말이다.

성을 바꿀 수 있다는 말에 한껏 들떴던 재혼가족들이 법률의 문턱 앞에서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그 시기를 놓쳐 버린 많은 사람들이 이제 와서 성을 바꾼다고 조각보처럼 누덕누덕 이어진 가족의 일체감을 회복하기는 어렵겠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가족들과 어린 마음들이 빛 좋은 개살구처럼 가족 법률을 쳐다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가족은 원래 잘 변화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어서 그 관습을 바꾸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법률을 바꿔놨다고 하루아침에 여성·가족부 필요 없다는 위험한 발상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언제나 법제와 실제는 달라왔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이름만 살아남게 하여 무늬만 여성정책, 가족정책이 실효를 거둘 것이라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성, 남성, 노인, 아이 모두를 행복하고 평등하게 하는 것에 국가적 에너지를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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